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회사 직원·공무원 등 사칭…구직자 대상 취업 사기 행각
로비 명목으로 수천만원 갈취
법원 "죄질 상당히 불량"…징역 3년6개월 등 선고
[ 김인선 기자 ] #경기 화성시에 사는 구직자 정모씨
통장을 들여다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 급여로 결혼 준비는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얼마를 버는데 앓는 소리를 하느냐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중소기업 계약직원으로 일하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벌어도 벌어도 통장 잔액이 그대로인 비현실적인 상황을 말이다.
그러던 중 지인 소개로 A씨(37)를 알게 됐다. 2013년 2월께 화성시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나는 기아자동차 하도급업체에서 품질관리를 하는 상주원이고,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높은 사람을 알고 있어요. 로비를 하면 기아차 비정규직으로 취업시켜줄 수 있으니 일을 맡겨 보세요.”
제안을 받아들였다. 현금인출기에서 500만원을 빼서 건넸고, A씨 계좌로 1000만원을 보냈다. 이튿날 500만원, 1주일 뒤 200만원을 더 부쳤다. A씨에게 보낸 돈을 계산하니 2200만원 정도 됐다. 대기업 취직인데, 2200만원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아차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검찰이었다. 알고 보니 A씨는 나를 만나기 전에 하도급업체를 퇴사했으며 기아차에 나를 입사시켜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했다. 개인채무 3억원을 갚을 목적으로 사기를 쳤다고 했다.
#울산시에 사는 구직자 김모씨
“국정원에서 일하는데, 현대건설 보안팀장이 내 후배다. 소개비를 주면 현대건설에 취업시켜주겠다.”
B씨가 솔깃한 제안을 한 것은 2012년 10월이었다. 소개비만 내면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얘기였다. 20대 절반이 백수라는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어떤 사람이 이런 제안을 고민 없이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서 B씨에게 송금했다. 그해 11월까지 1400여만원을 보냈다. ‘취직하면 뭐부터 할까’하는 행복한 고민 속에 출근날짜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B씨는 국정원 직원이 아닐뿐더러 현대건설에 취업을 알선해줄 의사와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네요.”
B씨가 나 같은 구직자에게 취업 알선 명목으로 뜯어낸 돈이 3억8100여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정신이 아찔했다. B씨는 주식 투자에 빠져 수억원의 손해를 보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법원 판단은
양진수 수원지방법원 형사11단독 판사는 지난달 20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양 판사는 “죄질이 상당히 불량해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 이 사건 편취액의 합계가 크고 이로 인한 피해자들의 피해 정도 또한 큼에도 불구하고 피해 회복이 이뤄진 부분은 거의 없다”고 판결했다.
조웅 울산지방법원 형사7단독 부장판사는 지난달 15일 사기,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1억4900여만원을 선고했다. 조 부장판사는 “국정원 직원 등을 사칭해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사기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들과 합의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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