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지난 7월 경제정책 당국자들 '질타'
경기 살리는 게 우선…경제개혁 속도 조절키로
"중국 지도부, 9월 비공개 회의서 결정" WSJ 보도
[ 김동윤 기자 ]
상하이증시가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지난 7월 어느 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사진)은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 핵심 당국자들을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상하이증시 급락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마치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듯한 사진을 표지에 쓴 것을 거론하며 “난 이런 일로 잡지 표지모델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여러분 덕분에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물경기 둔화에 대한 정책대응 실패가 상하이증시 급락의 빌미를 제공한 데 대한 질책성 발언이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중국 정부 내에선 안정적인 경제성장세 유지가 최우선 과제로 설정됐으며, 각종 금융시장 개혁·개방 정책 추진은 뒤로 미뤄지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 보도했다. 이 같은 정책 기조 변화는 중국 경제정책 핵심 당국자들의 9월22일 비공개 회의를 기록한 회의록에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WSJ는 전했다.
◆시장 불안에 금융 개혁·개방 늦추기로
WSJ가 입수한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재정부, 인민은행 등 중국의 경제정책과 관련한 핵심 당국자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금융시장 개혁·개방 정책만으로는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연 7%대 성장률 달성이 쉽지 않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당초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 확대가 결국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이른바 ‘개혁 보너스’를 기대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개혁 보너스’ 이론은 중국 금융시장이 평온할 때 나온 것이어서 달라진 상황에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 회의 참석자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고 WSJ는 전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중국 정부 당국자는 “현재 상황에서 금융시장 개혁·개방 정책을 밀고나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이 중국 정책 당국자들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 전문가들도 최근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위융딩 중국사회과학원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중국 개인투자자들의 해외투자 규제 완화가 중국 실물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 내에서 투자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충분히 개발되기 전에 해외 투자 규제가 완화되면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 이탈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도산해 실업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기부양 위해 재정투자 확대키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달 22일 중국을 방문한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 정부는 금융시장 개혁·개방 정책을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9월 회의가 개최된 이후 중국 정부가 연내 실행을 공언했던 각종 개혁·개방 정책이 하나둘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WSJ는 분석했다.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은 3월 “위안화 자본계정 자유 태환(자본시장 개방)을 연내에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중국 정부는 위안화 자본계정 자유태환 완수 시점을 2020년으로 연장했다. 중국 정부는 또 상하이자유무역구 지역에 한해 중국 개인투자자의 해외 투자를 허용하는 적격개인투자자(QDII2) 제도를 연내에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시행 시점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현재 허가제인 기업의 주식시장 상장도 올해 안에 등록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당초 계획이었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시행 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9월 회의에서 중국의 핵심 경제정책 당국자들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실물경기 회복을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공항 도로 철도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계획을 쏟아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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