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공자는 선생(先生)이란 어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맹자는 이 단어를 유달리 좋아했다. 저서 ‘맹자’엔 선생이라는 용어가 수십번 나온다. 그는 상대방을 최고로 존경하는 지식인으로 대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물론 이런 뜻 말고도 중국 역사에서 선생은 여러가지 의미로 활용됐다. 길을 아는 자가 선생이요, 앞서 태어난 자도 선생이었다. 술에 취했다 먼저 깨어난 이도 선생이고 도를 먼저 깨친 사람도 선생이었다. 발군의 기예를 보인 장인(匠人) 역시 선생으로 불렀다.
한국에선 이 단어가 더욱 엄격하게 쓰였다. 글을 가르친다고 모두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만 선생으로 불렀다. 조선시대 대제학 위에 선생이 있었다. 적어도 율곡 이이나 퇴계 이황쯤 돼야 붙이는 호칭이었다. 지금도 퇴계 자손들은 퇴계를 선생할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용어의 의미가 먼저 바뀐 건 중국에서다. 신해혁명(1911년) 이후 선생은 일반적으로 존경하는 연장자를 부르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문화대혁명 이후 1980년대 또 한 차례 의미 변동을 일으켜 그냥 남자 일반인을 부르는 호칭으로 격하된다. 지금은 중국 음식점에서 손님을 부르는 용어가 굳萱甄? 일부에선 이 용어가 중국 사회의 변천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단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에선 선생이라는 용어가 아직 한정적으로 쓰이고 있다. 학교 교원이나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에 대해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선생 개념도 약간 차이가 난다. 이승민·이순형(2011)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선 교사와 교수 이외에도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선생이라고 호칭하고 있지만 일본은 교사, 교수, 의사 말고는 선생이라고 부르는 게 한국보다 훨씬 협소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에선 첫 대면에선 선생이라고 호칭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 대학생들은 교수들을 대부분 교수님으로 부르고 있다. 선생님으로 부르는 학생들은 평균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정작 교수들은 다른 교수들을 선생님(40%), 교수님(30%)으로 칭하고 있다.
지난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중국과 대만의 첫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은 서로 선생이라고 불렀다. 상호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까닭에 공식 직책을 부를 수 없는 두 나라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호칭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선생이 다양한 의미로 쓰일 것 같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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