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반도체 강국의 필요조건

입력 2015-10-28 19:20
"수출 100억달러 기념한 '반도체의 날'
고부가 시스템반도체로 경쟁력 향상
IoT 등 활용저변 확대에도 힘써야"

이관섭 <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


오늘은 ‘제8회 반도체의 날’이다. 반도체 수출이 최초로 100억달러를 돌파한 1994년 10월29일을 기념해 2008년 제정했다. 1965년 국내 첫 반도체 공장이 세워진 이후 1982년 우리 기술로 만든 반도체로 세계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고, 10년 만인 1992년에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내놓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세계시장 점유율 2위, 수출 1위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해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다.

축적된 기술이 많지 않고 변변한 설비조차 없던 한국이 반도체산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무모한 일이라고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반도체 선도국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함께 대학, 연구소, 정부가 사활을 걸고 노력한 결과라 하겠다. 정부는 1985년 ‘반도체산업 종합육성 대책’, 2000년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2010년 ‘소프트웨어-반도체 동반육성 전략’ 등 다양한 정책으로 지원해 왔다.

최근 대뼁?환경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미국 같은 선발국은 반도체산업을 지키기 위해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중국 등 후발국은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선진기업 인수, 전문인력 영입 등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울러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기기, 자율주행자동차 등 차세대 첨단제품이 속속 등장하면서 정보를 단순히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보다 정보를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산업 구조도 다품종 소량 생산시스템으로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가 반도체 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생태계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 우선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된 산업구조를 시스템반도체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의 육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1990년대 말 이후 승승장구해 온 팹리스 업계가 2010년 이후 정체 국면에 들어서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해봐야 한다. 피처폰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능동적인 대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우리 팹리스 기업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 개발환경 조성, 연구개발 촉진, 세계시장 진출 등 종합적인 지원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반도체 장비 및 소재기술의 수준도 향상시켜야 한다. 경쟁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선제적인 투자도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설비투자는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이 시스템반도체 등 고부가∞?영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대규모 투자는 설계기업, 생산기업, 장비·소재기업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확충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정부도 낡은 규제를 혁파하면서 기업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뒷받침할 것이다.

결국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강국은 업계, 학계, 연구계, 정부 등 모든 주체가 긴밀히 협력할 때 가능할 것이다. 또 IoT, 자율주행차 같은 글로벌 메가 트렌드를 직시하고 반도체 개발과 적용의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제조업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도체산업에 뛰어들 때와 같은 절실함과 열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다면 반도체 강국, 더 나아가 제조업 강국이 머지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 반도체의 날을 맞아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이관섭 <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