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W시장 미성숙…세계 1% 불과
분할발주하고 유지보수 장기화
생태계 건강하면 일자리 더 생겨
김상규 < 조달청장 >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올해 2분기 청년실업률은 9.9%까지 올라갔다. 임금피크제 등 노동개혁을 하려는 것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청년실업의 원인을 기술발전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그중 하나가 로봇인 것 같다. 로봇이 생산과정을 대신함에 따라 공장에는 사람이 안 보인다. 로봇기술이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일자리까지 위협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사라진 일자리는 다른 분야에서 생겨난다. 새로운 일자리는 어디서 생기고 있는가. 신규 일자리 대부분이 소프트웨어(SW) 관련 업종에서 발생하고 있다. 로봇이 늘어날수록 로봇을 움직이는 SW와 관련 기술자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공장에서의 생산은 로봇이 책임지고, 로봇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SW는 인간이 만드는 산업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게 아닐까.
전 세계 SW시장 규모는 1조744억달러(2013년 기준)로 반도체시장의 3.2배, 휴대폰시장의 2.7배다. 보잉 항공기 747의 가격구성 요소에서 SW 비중이 70%를 차지하듯 SW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연히 SW산업의 부가가치율도 높다. 한국의 경우 55.2%로 제조업(22.2%)의 2.5배에 이른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취업유발계수(14명)도 제조업(8명)의 1.7배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SW산업의 현주소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국내 SW시장은 약 109억달러(2013년 기준) 규모로 세계시장의 1%에 불과하다. 패키지 SW분야 세계 100대 기업 중 국내 기업은 전무하다. 우수 인재들은 소프트웨어 업계 진출을 기피하고 있다. 젊은 인재들이 SW산업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2000년에 120명이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입학생은 올해 55명으로 줄었다.
우리 SW산업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며 성장을 하다 보니 인간의 지적 노력, 새로운 기술 등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평가 능력이 부족하다. 기술거래가 잘되지 않는 이유도 그 평가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발주자의 불명확한 주문이다. 명확한 설계 없이 수주기업이 알아서 해달라며 대충 요구한다. 그리고 완성단계에 이르러서 수정을 지시한다. 그러면 기업은 막판에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밤샘과 휴일 근무를 하게 된다. 추가 요구에 대해 비용을 청구할 근거(설계도 등)가 없으니 수주회사가 돈을 더 받을 수도 없다. 휴일 없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줄 수도 없으니 우수 인재들이 SW산업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설계의 미발달은 문서화 및 지식축 ? 전문가 육성을 어렵게 한다.
셋째, 하도급의 문제가 있다. 일부 대기업의 횡포에 중소기업의 반격이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공공조달시장에서 대기업은 배제되고 말았다. SW산업은 머리를 쓰는 고급 일자리인데, 대기업의 역량을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국내 SW시장 규모는 연간 약 12조원. 이 중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SW 조달시장 규모는 3조5000억원(2014년 기준)이다. 공공SW 조달시장을 제대로 활용하면 우리 SW산업 발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동안 조달청은 SW시장의 일자리 안정을 위해 매년 계약을 체결하던 유지보수 사업을 3년 단위로 장기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하청대금 지급 여부를 향후 입찰시 평가에 반영해서 유지보수 대금이 제대로 지급되도록 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조달 의뢰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예산의 추가 확보나 과업 축소를 요청하고, 상용 SW를 분리해서 공급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발주제도 개선이다. 제대로 된 설계도는 안 보이던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제값 주기, 예측 가능성, 전문가 양성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조달청은 지난 6월부터 설계와 구현을 분할해서 발주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시범사업을 통해 누구나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표준설계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설계비 먼저 주고 다음해에 구현사업 예산을 반영하는 예산편성의 원칙과 관행도 만들어 가야 한다. 갈등 조정이 필요한 초창기에는 예산이 더 들어갈지도 모른다.
예산 당국의 이해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분할 발주를 의무화하는 법제화를 해야 할 것이다. 炸??비전 없이는 도달하기 힘든 여정이다. 청년 일자리는 SW설계시장 창출 등 SW생태계 변환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김상규 < 조달청장 >
[강연회] 가치투자 '이채원.최준철.이상진' 출연...무료 선착순 접수중 (11.6_여의도 한국거래소)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