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상 < 신협중앙회장 mcs@cu.co.kr >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사진가 임응식 선생의 1953년 작 ‘구직’이라는 작품이 있다. 깊게 눌러쓴 모자, 그늘진 얼굴, 가슴에 ‘구직(求職)’이라는 팻말을 걸고 절망 속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과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동족상잔의 6·25전쟁 후 참혹했던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전란의 잿더미 속에 꿈이 사라졌던 그 시절. 협동을 통해 스스로 더불어 잘 살고자 하는 희망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것이 ‘신협운동’이다. 가톨릭을 중심으로 시작된 신협운동은 미국인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대익 신부 주도로 1960년 부산성가신협과 가톨릭중앙신협을 시작으로 이 땅의 가난한 서민, 자영업자, 중소상공인들에게 등불이 돼 주었다.
이후 신협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인 성장을 해오다 1997년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성장의 단맛에 취해 은행을 본뜬 대형화와 확장은 “협동을 통해 더불어 잘 살자”는 초심을 잃어버리게 했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잃어버린 시간 동안 신협은 초심을 지켜나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신협은 올해 창립 55주년을 맞이했다. 초심을 회복하고자 조합원 중심의 경영, 대출이 불가능한 저신용·저소득층의 금융지원을 통한 자립과 자활 기회제공, 지역인재 채용 확대를 통한 청년일자리 창출, 협동조합 간 연대를 통한 상생 등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금융’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요즘 우리 사회엔 협동의 가치를 공유하고 협동을 통한 상생 움직임에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착한 부자’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협동과 상생에 대한 적극적 참여와 지지, 이해관계자들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이탈리아 신협과의 대담에서 ‘돈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금융’의 역할을 강조했다. 임응식 선생의 사진 ‘구직’ 속 구직자처럼 지금 이른바 ‘7포세대’라 불리는 청년과 가난한 이웃들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은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다. 이제 그 질문에 대해 신협을 비롯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 영역에서 실천으로 답할 때다.
문철상 < 신협중앙회장 mcs@cu.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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