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석양 물든 금문교 아래로
샌프란시스코의 낭만이 흐르고
검푸른 파도와 사이프러스 숲
몬터레이서 '17마일 드라이브'
휘황찬란한 라스베이거스 지나
겹겹이 주름진 파노라마 협곡
웅장한 그랜드캐니언에서
세상의 끝을 마주하다
[ 최병일 기자 ]
미국 여행은 생소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미국처럼 잘 알려진 나라는 없을 텐데도 막상 미국 땅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끼니마다 햄버거를 먹었고, 엽서로 보았던 골든게이트의 모습도 상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라스베이거스의 모습에서는 예전에도 수없이 다녀온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낯설었던 것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황량한 사막지대인 데스밸리를 지날 때도 그랬고,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낸 그랜드캐니언의 모습을 볼 때도 그랬습니다. 그 안에는 거대한 자연에 맞서려는 미국인의 개척정신이 숨어 있었고, 백인 정복자들에게 쫓겨난 원주민의 슬픈 역사도 숨어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州)는 미국 이런 두 가지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최적의 여 旋痔都求? 자유와 소박한 평화가 넘치는 캘리포니아와 화려함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진면목을 찾아서 떠나볼까요?
100년 전 트램과 롬바드, 골든게이트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들어서자 가이드가 잘 알려진 팝송인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를 틀어준다. 노래 가사처럼 샌프란시스코는 평화롭고 소박하다. 골목 사이는 미로처럼 구불거리고 한 골목만 지나쳐도 언덕이 보인다. 언덕 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구불거리는 도로’인 롬바드 거리(街)다. 차 한 대 겨우 지나칠 정도로 작은 도로가 놓여 있다.
시내 한복판인 유니언 광장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는 공중에 떠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트램처럼 생긴 차를 굵은 쇠줄로 언덕 위까지 끌어올린다. 케이블카는 남북을 잇는 2개 노선과 동서를 잇는 1개 노선이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부두까지 이어진다.
항구도시답게 샌프란시스코 바닷가 근처에는 유명한 바다요리 전문점이 즐비하고 거리에는 트램이 달린다. 100년도 더 된 트램이 첨단의 도시를 질주하는 모습은 이채롭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은 익히 알려진 골든게이트 브리지, 금문교(金門橋)다. 길이가 약 2.8㎞인 골든게이트 브리지는 걸 底?건널 경우 50분 정도 걸린다.
골든게이트는 미국에서 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골드러시 시절 샌프란시스코 만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원래 금문교는 1937년 완공 당시에는 무채색이었으나 석양 무렵의 다리 모습이 아름다운 것을 알고 시 당국이 오렌지색 페인트로 칠했다. 황금으로 향하는 문인 금문교는 걸어서 가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오렌지색의 육중한 다리 사이로 화물선이나 페리가 오가고 오른편으로 펼쳐진 백사장에는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다.
존 스타인벡 고향에서 만난 수족관
광활한 캘리포니아를 빠듯한 일정으로 다 둘러볼 수는 없지만 핵심적인 곳이라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자동차를 빌려서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내려간 몬터레이다. 몬터레이에는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생가가 있다. 작고 고요한 항구마을이었던 몬터레이는 지금은 호텔과 상점,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번잡해졌다.
몬터레이 외곽에는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montereybayaquarium.org)이 있다. 사실 이 수족관은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었다. 낙후된 몬터레이에서 도시재생운동이 벌어지면서 공장은 수족관으로 변신했다. 이제는 미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몰려오는 관광명소가 됐다. 수족관은 아담하 嗤?수종도 다양하고 직접 물고기를 만지며 체험할 수 있어 재미있다. 특히 메인 수조 안에서 거대한 정어리 떼가 군무를 추는 모습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몬터레이에서 다시 해변 쪽으로 내려가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안 드라이브 명소인 ‘17마일(약 27㎞) 드라이브 코스’가 나온다. 개인 소유인 이 도로는 바람에 꺾인 사이프러스 숲과 흰 포말을 뿜으며 거칠게 몰아치는 바다, 눈부신 해변이 조화를 이룬다. 시가로 수백억원을 넘는 아름다운 주택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전 세계 골퍼들이 한번은 라운드하고 싶어하는 페블비치골프장을 지난다. 자동차를 따라오던 안개도 어느새 바다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은빛으로 바다가 펄럭거린다. 몇 번씩이나 뒤척이던 파도조차 잠잠해지면 달콤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여행정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제퍼호텔(hotelzephyrsf.com)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한 부티크 호텔로 명성이 높다. 몬터레이에 있는 힐튼 가든인 몬터레이는 바닷가에 있어 전망이 뛰어나다. 베이커스필드 메리어트는 데스밸리로 가는 길목에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MGM그랜드호텔(mgmgrand.com)은 객실이 6000개가 넘는 매머드 호텔이다. 미슐랭 스타 셰프의 대부라고 불리는 조엘 로부숑의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 라뜨리에(L’Atelier de Joel Robuchon)는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MGM그랜드호텔에서 펼쳐지는 KA쇼는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벨라지오호텔 1층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고(LAGO)에서는 분수쇼를 보며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몬터레이베이수족관의 입장료는 성인이 39.95달러, 12세 미만 어린이는 24.95달러, 학생 34.95달러다.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를 지나서 있는 네펜시(nepenthebigsur.com)는 미국 서부에서 유명하다. 스테이크나 버거 등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렌터카 투어 땐 전국 체인망이 잘 발달된 허츠렌터카(hertz.co.kr)가 편리하다. 1600-2288
데스밸리에선 반드시 선글라스를 끼고 선크림을 듬뿍 바르는 것이 좋다. 여름에는 50도를 넘어설 때도 있어 비교적 선선한 겨울(12~3월)에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황무지가 연상되는 데스밸리의 풍경
17마일 드라이브가 맛보기였다면 본격적인 자동차 투어는 베이커스 필드에서 시작된다. 베이커스 필드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황량한 사막지대를 넘어 ‘죽음의 계곡’에 도착했다. ‘죽음의 계곡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nal Park)’은 라스베이거스가 화사한 첨단도시가 되기 전의 모습이다.
이 지역이 데스밸리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얻은 것은 골드러시 때 캘리포니아로 금을 캐러간 노동자들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대를 통과하다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오직 부서진 형상들의 퇴적/ 거기엔 해가 쬐어대고/ 죽은 나무에는 그늘도 없고/ 귀뚜라미의 위안도 메마른 돌 틈엔 물소리도 없다./ 다만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데스밸리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바위산을 달구듯 태양은 맹렬히 타오르고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뒤로 뽀얀 흙먼지가 자욱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무지 중간에 아프리카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모래사막이 펼쳐졌다. ‘매스키트 플랫 샌드듄(Mesquite Flat Sand Dunes)’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래언덕 위에는 엉겅퀴와 선인장 외에는 온통 모래뿐이다. 생물이 살 것 같지 않은 모래사막에도 도마뱀을 비롯해 수백종의 생물이 산다고 한다.
다시 395번 도로를 타고 예술가의 길이 끝나는 곳에 ‘악마의 골프 코스’가 있다. ‘사막에 무슨 골프장이 있을까?’ 의아했지만 막상 골프 코스에 가 보니 잔디도 없고 말라붙은 갯벌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악마가 골프를 친다면 이런 곳에서 치지 않겠느냐는, 미국인답게 유머러스한 작명법인 것 같다. 악마의 골프장 너머로는 배드워터가 이어진다. 고도가 해수면보다 낮아서 사막지대에 물이 고여 있는 유일한 지역이지만 염도가 너무 높아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나쁜 물’(배드워터)이 된 것이다. 배드워터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있다. 데스밸리에서 일출과 일몰 풍경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거대한 테마파크, 라스베이거스
황무지를 돌아 국도를 타고 4시간 넘게 가다 보니 사막 가운데 마치 환상처럼 네온사인 불빛이 부옇게 보인다. 라스베이거스다. 어떤 이들은 라스베이거스를 ‘성인들을 위한 거대한 테마파크’라고 했다. 1829년 멕시코 상인 라파엘 리베라는 탐험대를 이끌고 미국 중부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길을 개척하다 사막에서 우연히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리베라는 그 오아시스를 스페인어로 ‘초원’이라는 뜻인 라스베이거스라고 이름 붙였다. 그 작은 오아시스가 후일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리라고는 리베라도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원래 21세 이상만 출입할 수 있었던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호텔은 1990년대 이후 다양한 호텔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중세시대 ‘아서왕의 전설’을 테마로 한 엑스칼리버호텔을 비롯해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수쇼가 펼쳐지는 벨라지오호텔도 이때 만들어졌다. 실제 크기의 절반 정도인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크라이슬러빌딩과 센트럴파크 등 뉴욕을 대표하는 모든 것을 뉴욕뉴욕호텔에 재현해 놓았다. 가족형 테마호텔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라스베이거스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든 것은 역시 카지노다. 어떤 호텔이건 로비에 들어서기만 해도 슬롯머신의 전자음향이 들려온다. 번쩍이는 불빛과 24시간 쉼없이 돌아가는 룰렛처럼 라스베이거스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
억겁의 시간이 만든 그랜드캐니언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와 호텔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 뼁【?4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신이 빚은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그랜드캐니언이 나온다. 억겁의 시간을 대지 위에 포개놓은 듯 굽이치는 협곡과 거대한 암반의 땅인 그랜드캐니언은 요세미티, 블랙캐니언과 함께 미국의 3대 협곡이다. 새벽에 헬기를 타고 둘러본 그랜드캐니언의 모습은 장관이다. 붉은 대지에 솟아오른 계곡과 계곡 사이로 강물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다. 20억년에 걸쳐 만들어진 그랜드캐니언은 경부고속도로보다 긴 447.5㎞다.
붉은 대지 위를 끝없이 비행하는 도중 거대한 크기의 댐이 보인다. 미국의 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딴 후버댐이다. 높이가 221.4m에 달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이 없었다면 24시간 화려한 네온사인의 라스베이거스도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을 것이다. 헬기는 어느새 그랜드캐니언 협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더포인트를 넘어 회항하기 시작했다. 협곡 너머 붉은 대지는 그제야 기지개를 켰다.
라스베이거스=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취재협조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 캘리포니아관광청(visitcalifornia.co.kr), 라스베이거스관광청(visitlasvega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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