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당황하지 않는 기업의 특징

입력 2015-10-25 16:03
수정 2015-10-26 10:23
(유하늘 디지털전략부 기자) 어린 아들 둘과 함께 길을 걷던 어머니 시호 오카모토씨.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도로를 달리던 대형트럭 차체에서 타이어가 떨어져나와 그녀를 덮쳤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오카모토씨는 휠을 합쳐 약 100kg 무게의 타이어에 맞아 두개골과 척추가 파손돼 그 자리에서 숨졌다. 2002년 1월 10일 일본 요코하마시에서 발생한 일이다.



▲ 위기관리 성패를 좌우하는 단초는 '기업 철학'

사고를 낸 트럭 제조사인 미쓰비시자동차는 자동차 결함을 부인했다. 볼트를 제대로 조이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국의 조사 결과 1992년부터 2002년까지 미쓰비시자동차 트럭에서 주행 중 타이어가 빠지는 사건이 51건 발생했고, 회사는 구조적 결함을 알고도 숨겨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경영진이 구속되고 미쓰비시자동차 매출은 끝없이 추락했다.

대부분 기업은 이처럼 위기 발생시 현실적인 편익을 추구하게 된다. 잘못을 부인하는게 당장은 이익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어 사건의 경우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전말은 어차피 드러날 것이었다.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정보 은폐는 이미지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쓰비시자동차가 소비자 중심의 기업 철학에 바탕한 체계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지녔다면 어땠을까. 정보를 은폐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되 장기적으로 조직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래에선 기업 명성관리 전문기업 에스코토스(강함수 대표)의 자문을 바탕으로 기업 철학에 기반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사례를 짚어보려 한다. 기업 철학을 현장에 접목시키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윤리규범' 바탕으로 안전 캠페인 벌인 LG전자

2010년 2월 18일 대전의 한 아파트에서 어린이가 LG전자의 드럼세탁기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다음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고, 사고발생 5일 후인 23일 LG전자는 자발적으로 세탁기 리콜을 실시했다.

사실 LG전자에 법적 책임은 없었다. 2008년에도 동일한 사고가 있었고 이후 LG전자는 안전캡(세탁기 문이 닫히지 않게 문고리에 씌우는 장치)을 무료로 배포했었다.

기업은 소비자 사고와 관련해 법적 책임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로우키(low-key) 전략'을 사용한다. 로우키 전략은 이목을 끌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억제하는 전략을 뜻한다.

반면 LG전자는 법적 책임을 넘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실무진에 지시했다. 실무진은 드럼세탁기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사례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해당 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철저한 안전교육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소비자 안전 캠페인을 기획/실행했다.

전국의 유치원과 학교에서 세탁기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 세탁기 안에 들어갔을 때의 위험성을 알리는 동영상을 배포했다.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소비자 안전 캠페인 동참 호소, 동영상 배포, 학교 안전캠페인을 실시했다.

LG전자가 적극적 커뮤니케이션에 나설 수 있던 배경엔 경영진에서 실무진까지 기업 철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였다는 점이 꼽힌다. 회사는 윤리규범 '제1장 고객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바탕으로 '고객의 안전'을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가치로 설정했다. 덕분에 단기적인 재무 손실보다 소비자의 안전을 중시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알려졌다. 침묵으로 일관했다면 언론과 소비자는 안전불감증이라고 비난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롯데마트, 소비자의 시선으로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반박

2010년 12월 8일, 롯데마트는 시중가의 반값 이하인 5000원에 자체 브랜드인 '통큰치킨'을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경쟁사인 이마트가 '반값 피자'를 내놓은 직후였다.

롯데마트는 곧바로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여론은 "소비자를 위한 '착한' 가격"이라는 의견과 "생계형 자영업자 영역에 대기업이 횡포를 부린다(골목상권 침해)"는 부정적인 여론으로 나뉘었다.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이 이익임이 분명하지만, 상생이 화두였던 당시 분위기 상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전략은 부정적인 여론을 맞고 있었다.



이런 비난 여론에 맞서 롯데마트는 통큰치킨 출시 1주일 만인 12월 13일에 판매 중단을 발표했다.

롯데마트는 판매 중단과 함께 내놓은 발표문에서 '소비자에게 고품질의 제품을 값싸게 전달한다'는 소비자 철학에서 내놓은 제품이라는 취지를 강조했다. 또 '영세 상인에게 피해를 끼쳐 송구하다'는 사과와 함께 '절대 역마진이 아닌 저마진'이라며 치킨 프랜차이즈협회의 고마진 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동시에 남아있는 통큰치킨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하고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아래와 같은 일화를 포함시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현장 실무진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최고경영진의 의견만 반영했다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생생한 멘트였다.

"지난 10월, 배추 한포기에 15,000원이 넘던 '배추파동' 때 가격 안정을 위해 업계 최초로 롯데마트가 수입한 중국산 배추를 사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2,500원짜리 배추를 사기 위해 줄 서 계셨던 아주머니'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존 치킨 프랜차이즈의 가격 구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점도 일부 소비자의 긍정적 지지를 받았다. 당시 업계에서는 "소비자 철학을 내세운 빠른 전략적 결정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참고) 롯데마트 통큰치킨 판매중단 입장 전문 링크: http://bit.ly/1Pssugd

▲ 위기 관리, 하향식에서 벗어나 상향식으로 진화해야

한국 기업들은 위기 桓?【?'기업 철학'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일단 중요성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명성관리 전문기업 에스코토스의 강함수 대표는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조직문화, 사회적 책임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 등을 규정하고 위기 발생시 지침이 될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실행이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위기대응 원칙이 현장에서 적용되는 과정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회사가 지켜야 하는 일련의 신조를 내재화하고 실전에 적용하는 건 결국 일선 현장에서 일어지는 일"이라며 "회사가 이를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강조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기관리·홍보 전문가인 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도 "기업이 표방하는 철학과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모습간에 큰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두산그룹은 이미지 광고를 통해 '사람이 미래다'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지만, 중앙대 사태를 통해 드러난 모습은 다소 달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 철학의 성공적 내면화를 위해선 하향식(탑-다운)이 아닌 상향식(바텀-업)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강 대표는 "외국계 기업, 특히 다국적 기업은 다양한 워크샵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에 대한 가이드와 예산을 배정한다"면서 "국내 기업도 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구성원의 실질적 참여와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상향식이 아닌 주입식·하향식 프로그램 위주라 위기 발생시 적용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끝) /skyu@hankyung.com

한경+는 PC·폰·태블릿에서 읽을 수 있는 프리미엄 뉴스 서비스입니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