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상봉 첫날…남측 389명 '눈물의 재회'
"전쟁 때문에 우리가 …"
임신 중 헤어졌던 父子 첫 만남
"너도 늙었구나" 아버지 오열
아들 "당당하게 살았어요" 큰절
여동생 만난 최고령 김남규 씨
뇌출혈로 말못해 어깨만 '툭툭'
[ 공동취재단/김대훈 기자 ]
“결혼하고 한 해도 (같이) 못 살았으니, 보고 싶었던 것을 말하면 한도 끝도 없지.”
이순규 씨(84)는 아들 오장균 씨(65)와 함께 1950년 6월 헤어진 남편인 오인세 씨(82)와 65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 부부는 결혼한 지 꼭 6개월20일 만에 헤어졌다. 남편이 “훈련 받으러 간다. 잠시 다녀올게”라며 충북 청원의 집을 나선 뒤 행방불명됐던 당시 이씨는 임신 중이었다. 북측의 오씨는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앉으라”며 손을 꼭 잡았다. 환갑을 훌쩍 넘긴 아들은 큰절을 했다. 오씨는 아들에게 얼굴을 맞대며 “많이 닮았지”라고 했다.
20일 금강산에서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시작한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1회차 행사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별의 한을 풀었다.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3시30분 첫 만남을 시작으로 7시30분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이들은 21일 개별상봉을 한 뒤 22일 다시 헤어질 예정이다.
○65년 만에 해후한 부부
남측 이산가족 389명은 이날 아침 일찍 금강산으로 향했다. 남측 상봉단은 동해선 출입사무소(CIQ)와 비무장지대(DMZ), 북측 CIQ를 지나 낮 12시30분께 금강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오후 3시30분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측 가족 141명(신청자 96명 및 동반가족 45명)을 만났다.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하자 상봉장은 이내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이옥연 씨(87)는 1950년 8월 집을 나섰던 남편 채훈식 씨(87)와 65년 만에 해후했다. 분홍색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이씨는 65년간 기다린 남편의 얼굴을 쉽게 쳐다보지 못했다. 이씨는 남편이 혹시 돌아올까 싶어 재가하지 않고 경북 문경의 집을 지켰다. 남편 채씨는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아들 희양씨(64)에게 끊어질 듯 말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어머니가 나 없이 혼자서 가정을 책임지고…. 아버지를 이해해다오. 나를 위해서 어머니는 일생을 다 바쳤다.”
○부자, 동기간의 애끓는 만남
손종훈 씨(66)와 북측 권근씨(82) 부자도 만나자마자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종훈씨가 “태어나서 처음인데 어떻게 알아봐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난 귀가 먹어 잘 듣지를 못해”라고 답했다. 권근씨의 여동생 권분씨(77)는 “내 생전에 오빠 얼굴을 못 보는 줄 알았지”라며 오열했다. 며느리 차순례 씨(65)는 “아버님 제사를 40년간 지냈어요. 만나기까지 하니 너무 반갑습니다”고 공손히 인사했다.
이번 방북단의 최고령자인 김남규 씨(95)도 전쟁통에 헤어진 북측 여동생 남동씨(82)와 만났다. 남규씨는 교통사고와 뇌출혈 후유증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워 “오빠가 옳은가(맞나)?” 하는 동생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마냥 동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릴 뿐이었다.
김철식(80), 복녀(78), 복순(75) 세 할머니는 북측 오빠 한식씨(85)와 만났다. 여동생들은 농사일을 잘 돕고, 동생들에게 자상했던 큰오빠를 보자마자 오열했다. 여동생들은 “오빠 사랑도 못 받고 살았어”라며 오빠의 어깨와 얼굴을 연신 쓰다듬었다.
이옥봉 씨(76)도 북측의 형 옥관씨(86)를 보자마자 “형님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소”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남측 박문수 씨(70)는 누나 문경씨(82)를 보자 거칠어진 손을 부여잡으며 준비해간 바셀린과 비타민 등 의약품을 꼼꼼히 챙겨줬다. 문수씨는 품속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며 어머니가 누나를 생각하며 불렀다는 노래를 들려줬다. “뜸북뜸북 뜸북새, 서울가신 큰딸은 소식도 없고.” 누나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금강산=공동취재단/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