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맞던 드라이버 페어웨이샷이 하필 이때…
PGA 개막전 프라이스닷컴
연장 두 번째 홀서 패배
2부투어 뛰던 그리오, 정규투어 데뷔전 우승
매킬로이 공동 26위 부진…이동환 4언더 공동 55위
[ 이관우 기자 ]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의 실버라도CC(파72·7203야드) 18번홀. 드라이버 티샷을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떨군 케빈 나(32·한국명 나상욱)가 그린을 힐끗 보더니 다시 드라이버를 빼들었다. 270야드 남은 세컨드 샷을 드라이버로 공략하기 위해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015~2016시즌 개막전 프라이스닷컴오픈의 우승자를 가리는 연장 2차전이란 무게가 부담으로 작용할 만한 상황.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공이 낮게 날아가 그린에 굴러 올라가면 2온으로 이글을 시도할 수 있고, 좌·우측으로 당겨지거나 밀려도 세 번째 어프로치샷으로 붙이면 버디가 가능하다는 계산을 이미 마친 터였다.
드라이버 스윙이 아크를 그린 순간 공 뒤에서 ‘불길한’ 불꽃이 튀었다. 시작부터 왼쪽으로 출발한 공은 점점 더 크게 휘더니 나무 밑 러프로 들어가고 말았다. 클럽 헤드가 공 뒤에 박혀 있던 작은 돌덩이에 먼저 맞아 닫히면서 악 ?훅이 난 것이다.
○또 연장 패배 악몽
이날 2언더파 70타를 친 케빈 나는 최종합계 15언더파로 에밀리아노 그리오(아르헨티나)와 연장 2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하지만 우승컵은 들어올리지 못했다. 그는 연장 2차전에서도 드라이버 세컨드 샷을 치는 ‘베팅’을 했지만 보기에 그쳐 버디를 잡은 그리오에 무릎을 꿇었다.
2005년과 2014년 경험한 두 번의 연장 패배를 ‘약’으로 삼고 싶었던 그의 꿈도 이뤄지지 않았다. 연장 3전 전패. 지난해 그는 메모리얼토너먼트에서 친한 후배인 마쓰야마 히데키(일본)에게 연장 패배를 당한 뒤 ‘농반 진반’으로 식당에서 밥값 계산서를 마쓰야마에게 주고 나오기도 했다. ‘언젠가는 내가 연장에서 이겨 밥을 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역시 물거품이 됐다.
드라이버 세컨드 샷이 이날 그를 롤러코스터 골퍼로 만들었다. 이 샷 덕에 연장에 진출했지만, 그 탓에 4년 만에 찾아온 우승 기회도 날렸다. 3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치는 기염을 토하며 공동 2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그는 18번홀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 세컨드 샷을 그린 오른쪽 러프에 붙인 뒤 세 번째 어프로치샷으로 홀컵 2m 부근에 떨궈 버디를 기록, 극적으로 연장전에 합류했다. 2차전에선 똑같은 샷이 뒤땅이 된 것이다.
○세계랭킹 72위 ‘무명’의 반란
그리오는 2012년부터 유러피언투어에서 주로 뛰어온 세계랭킹 72위의 무명 선수. 하지만 PGA 2부투어인 웹닷컵투어의 플레 結의?파이널시리즈 4개 경기에서 10위권 세 번, 우승 한 번을 기록하며 골프팬 사이에선 ‘꼭 지켜봐야 할 2015~2016시즌 유망주’로 지목됐다. 이번 대회는 2부투어 최종 우승자 자격으로 따낸 시드권으로 처음 출전했다.
정규투어 우승컵은 그러나 쉽게 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 번째 연장홀에서 우승이나 다름없던 1m짜리 짧은 버디 퍼팅을 놓치면서 지난 3월 열린 푸에르토리코오픈 연장전 패배의 악몽을 다시 꾸는 듯했다. 그는 당시 똑같은 1m 퍼팅을 놓쳐 첫 승 기회를 날렸다. 그리오는 “올해 목표가 50등 안에 들어 천신만고 끝에 딴 시드를 유지하자는 것이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며 감격해했다. 그리오는 상금 108만달러(약 12억1000만원) 외에 꿈의 무대인 메이저대회 마스터스를 포함해 2년간 PGA투어를 뛸 수 있는 시드를 약속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9언더파 공동 26위로 체면치레를 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4언더파를 친 이동환(28·CJ오쇼핑)이 공동 55위에 이름을 올려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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