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일자리 공포 마케팅인가

입력 2015-10-15 18:20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꼽히던 기술경제학자 폴 로머는 좀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령인 그가 수상 기대감으로 건강에 애쓴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터다(노벨상은 산 사람만 받으니). 하지만 이왕 기다린 김에 헬스클럽 사용권을 내년까지 연장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인류에게 최대 위협은 성장 둔화”라며 “저성장은 모든 것을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성장 둔화를 타파할 길이 혁신 말고 뭐가 있겠나. 혁신을 하면 새로운 성장이 가능하다는 ‘신성장론’을 주창한 로머에게 한 번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로머의 ‘혁신 신성장론’에 맞서 ‘혁신 종말론’을 외치는 사람도 물론 있다. 이는 로머 관점에서 보면 곧 ‘성장의 종말론’을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를 한마디로 반박한 사람은 바로 경제사학자 마틴 와이츠만이다. “52개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가능한 조합 수는 태양계의 원자 수보다 더 많다”며 혁신은 결코 고갈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이 일자리 앗아간다고?

문제는 혁신의 종말론을 반기며 억지로라도 그렇게 되도록 투쟁하고야 말겠다는 이들이다. 아예 ‘일자리 공포 마케팅’이라는 좌판을 깐 사람들도 있다. 기술발전에 따른 일자리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이다. ‘일자리의 절반이 곧 로봇 때문에 사라진다’ ‘제3의 실업파도’ 등 겁을 잔뜩 준다. 이게 맞다면 산업혁명 때부터 그렇게 됐어야 했다. 그때도 러다이트들의 기계 파괴 운동이 일지 않았나.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창출됐다. ‘보상이론’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역사적 경험을 봐도 단기적으로 특정 분야에서 실업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이 더 많은 다른 일자리를 창출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특별히 다르다고 할 이유를 못 찾겠다. 다가오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까지 접수할 것이라며 야단이다. 이리되면 일자리가 모조리 사라진다고. 일자리 대체를 과장하는 데만 열을 올릴 뿐 생산성과 소득 증가,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유발하는 ‘보완효과’는 깡그리 무시하는 선동이다. 오죽하면 《제2의 기계시대》의 에릭 브린졸프슨, 앤드루 맥아피 등 정보기술(IT) 저명인사들이 나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얼마나 잡아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잘못”이라며 “그건 인간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을까.

‘노동시장’ ‘교육’이 진짜 범인

선동가들은 기술을 범인으로 몰지만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최근의 논문들이 말해주듯 ‘기술과 교육의 경주’ ‘기술과 노동시장의 경주’에서 교육과 노동시장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로 인한 모빌리티 부재가 바로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진단이다. 결국 노동시장의 유연성, 교육의 다양성을 가진 국가는 ‘일자리 위너’가 될 것이고, 노동시장의 경직성, 교육의 획일성을 고수하는 한국 같은 나라는 ‘일자리 루저’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고용창출형 기술혁신’이니 뭐니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나 해대고, 절박한 노동·교육개혁에는 결단성이 전혀 없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혁신에 저항하거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새로운 일자리는 물론 있는 일자리마저 날릴 게 뻔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은 자명하지 않은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면 차라리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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