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내유보금에 대한 악의적 주장들

입력 2015-10-13 18:12
"유보금은 곳간에 쌓아둔 현금?
회계지식 부족에서 생긴 오해일뿐
포퓰리즘적 선동정치 걷어내야"

강병민 < 경희대 교수·회계학 bmkang@khu.ac.kr >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던 ‘사내유보금 논란’이 올해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국내 기업은 해외 동종업계에 비해 과도한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30대 국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수백조원에 달해, 유보금을 투자나 일자리 창출 또는 상품가와 서비스 요금을 내리는 데 써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도대체 사내유보금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동네북’ 신세가 된 것일까. 과연 유보금을 풀어 상품가나 서비스 요금을 내리고, 투자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을 꾀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사내유보금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주식회사는 주주가 투자한 돈을 모아 사업을 하고, 주주는 거둬들인 이익을 배당으로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주주들은 회사의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이익을 모두 회수하지 않고 일부를 다시 회사에 투자하는데, 이 같은 재투자금액을 매년 누적해 회계상으로 나타낸 것이 사내유보금이다.

주주가 재투자한 금액은 회사 경영상 돈이 필요한 모든 곳에 사용되므로, 사뼈?릴鳧?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에 스며들게 된다. 설비나 지분투자, 은행 예금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결국 사내유보금의 크기는 회사가 보유한 총자산 중 주주의 투자를 통해 벌어서 취득한 자산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셈이다.

사내유보금과 관련한 논란들은 몇 가지 오해에서 발생한다. 첫째, 유보금을 마치 곳간에 쌓아 놓은 현금처럼 언제든지 필요하면 꺼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보금은 주주가 재투자한 누적 금액을 표시할 뿐 현금 보유액과는 무관하다. 차입금이 외부로부터 얼마나 빌렸는지를 표시할 뿐 현금 보유를 나타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통상 유보금은 대부분 설비투자 등에 사용되므로, 유보금을 풀라는 것은 이미 투자한 자산을 처분해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고용을 늘리라는 이상한 요구가 된다.

둘째, 유보금이 많은 회사는 수익성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의 주요 원천이 사업이익이므로 유보금이 많은 회사는 이익도 많이 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생각이다. 이익을 많이 내면 유보금 규모도 클 가능성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회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배당을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 유보금은 크게 달라진다.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더라도 모두 배당한다면 유보금은 증가하지 않을 것이고, 재투자하는 금액이 클수록 유보금은 커지기 마련인 것이다.

또 당기순이익이 주주의 기회비용을 반영하지 않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0%의 기대수익률을 가진 주주가 10조원을 투자해 당기순이익 8000억원이 났다면, 주주의 기회비용은 1조원(10조원×10%)이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 2000억원이 발생한다. 이?상황에서 3000억원을 배당한다면 나머지 5000억원만큼 유보금은 커지게 된다. 즉 경제적 손실이 났지만, 유보금은 지속적으로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유보금이 크다는 이유로 상품가나 서비스 요금 인하를 요구할 수 있을까. 주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은 그간 경제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내유보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주장들을 듣다 보면 유보금이 마치 문지르기만 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회계지식을 조금만 갖고 다시 생각해 보면 문제와 해결책의 맥을 잘못 짚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회계용어를 편하게 해석해 그릇된 해결책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고민함으로써 그 과실을 모든 국민이 함께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병민 < 경희대 교수·회계학 bmkang@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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