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중소기업 미래 가를 협업기술

입력 2015-10-12 18:25
수정 2015-10-13 05:07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최근 폭스바겐 사태로 독일 제품이 신뢰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독일 기업 전반의 위기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 같다. 독일 기업의 강한 경쟁력은 폭스바겐 같은 일개 대기업이 아니라 여러 기업들이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첨단기술을 공동개발하는 ‘협업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차세대 물류시스템 연구를 위해 도르트문트의 프라운호퍼물류연구소와 협력을 하고 있다. 여기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업체 SAP가 합류하고 있다.

獨·日 미래기술, 협업에서 탄생

메르세데스벤츠는 레이저를 활용한 초정밀 금속가공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아헨의 프라운호퍼레이저연구소와 협력하고 있다. 지멘스는 스마트팩토리 구현에 쿠카로보틱스와 협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인더스트리 4.0)’ 모델 개발에는 독일인공지능연구소를 비롯해 BMW, 티센크루프, DHL 등 수많은 기업과 연구소, 공과대학들이 참여하고 있다.

부품·소재산업이 강한 일본에서도 협업이 활발하다. 중소기업 밀집지 히가시오사카의 금형업체 아오키는 10여개 업체와 공동으로 인공위성 개발에 성공했다. 도쿄대와 오사카대가 이를 거들었다. 도쿄 오타구의 중소기업들은 공동으로 봅슬레이를 상품화했고, 60여종의 의료기기를 개발 중이다.

협업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계 전자 소프트웨어 등이 합쳐지는 융복합제품 같은 차세대 먹거리를 혼자 개발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협업은 ‘1+1’을 ‘3 이상’으로 만들 수 있는 매력도 있다.

국내에서도 협업이 확산되고 있다. 각지의 산업단지에서는 클러스터를 형성해 공동으로 차세대 먹거리 개발에 나서고 있다. 클러스터에 참여하는 기업인과 연구원 및 대학교수는 2005년 2706명에서 금년 6월 말에는 7650명으로 10년 새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은 78개 미니클러스터를 결성해 의료기기 등의 개발에 나서고 있다.

성공 위해선 ‘협업 노하우’ 필요

최근에는 서울 문래동 소공인들도 힘을 모아 ‘자기만의 제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몇몇 기업은 문래예술인들과 협업을 통해 멋진 디자인의 생활용품을 선보였다. 이 지역 2세 경영인 8명은 금속 주얼리제품, 공구를 이용한 보드게임 등의 공동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과 일본은 협업문화가 정착돼 있지만 한국은 서투르다. 협업에 성공하려면 ‘협업기술’이나 ‘협업모델’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프라운호퍼연구소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프라운호퍼는 기업과 기술개발 계약을 맺을 때 정확한 목표를 세운다.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 프라운호퍼의 역할, 개발 기간과 비용 부담, 특허권과 실시권의 소유관계 등에 관해 문서화한 뒤 이를 추진한다. 무임승차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자 간의 신뢰다. 그동안 공동브랜드 등 국내 기업 간 협업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이런 협업절차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한 데 그 요인이 있다. 산학협력에 나섰던 몇몇 공대 교수는 “한국인에겐 협업의 DNA가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DNA를 탓할 게 아니라 ‘협업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노하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미래는 결국 협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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