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S&P의 저주'…브라질 국채 투자자만 울린다

입력 2015-10-11 19:05
S&P 평가, 선제적·공세적 전환
브라질 위기 가능성 20% 이하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요즘 들어 미국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움직임이 유독 분주하다. 브라질을 투기등급으로 강등시킨 데 이어 느닷없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곧이어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고 봤던 일본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렸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는 미국의 무디스와 S&P, 유럽의 피치를 꼽는다. 국제신용평가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 기준이다. 시장점유율은 무디스, S&P, 피치 순이다. 피치는 시장 점유율상 세 번째이기 때문에 3대 평가사에 들어가는 것이지 무디스, S&P에 비해서는 턱없이 뒤떨어진다.

시장 점유율은 평가사의 영향력에 곧바로 직결된다. 3대 평가사의 영향력도 무디스, S&P, 피치 순이다. 금융위기 이후 무디스의 영향력이 더 커져 경쟁사인 S&P는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다. S&P의 움직임이 분주한 것도 무디스보다 떨어진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숨은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S&P는 평가시기와 방식을 선제적이고 공세적으로 바꾸면서 ‘정례평가’릿募?‘수시평가’를 더 중시한다. 하지만 무디스는 정반대다. 평가사의 생명인 ‘선제성’을 유지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지만 가능한 한 ‘수시평가’보다 ‘정례평가’를 지키려고 노력해 안정적이며 예상도 가능하다.

평가사의 가장 큰 역할은 투자자를 안내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슨 일이 터졌는데 평가를 안 하면 불안해지는 심리적 강박감이 바로 ‘평가 매너리즘’이다. 평가를 너무 잦게 하면 평가사를 이용하는 투자자부터 믿지 않는다.

단적으로 국내 증권사의 주가 예측을 보자.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때가 되고 무슨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주가 예측치가 나온다. 증권사별 주가 예측치도 마치 입을 맞춘 듯 비슷하다. 주가 예측의 최대 적(敵)인 ‘아니면 말고’ 식의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다.

불확실성 시대일수록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증권사의 경쟁력과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최대 변수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는 어려울 때일수록 이들을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하면서 스스로 짐을 싸게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먼저 버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S&P의 평가도 지난달 이후 조정된 브라질, 한국, 일본 국민 모두가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다. 신용등급을 강등당한 브라질, 일본 국민의 그런 태도는 십분 이해가 가지만 상향 조정된 한국 국민조차도 ‘의외다’ 할 정도다. 한국의 정부 관료들만 환영할 뿐이다.

또 하나의 기준인 FTSE지수와 MSCI지수에서 한국의 위상을 보자. 전자에서는 선진국으로 분류된 지 6년이 넘었으나 후자에서는 올해 평가에서 선진국 예비명단에서조차 빠졌다. 선진국, 신흥국 중 ‘한국이 어디에 속할까’ 하는 질문에 전혀 도움되질 않는다. 차라리 평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이제는 예측과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때가 됐다. 너무 맹신하거나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우리 정책당국처럼 S&P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는 환영하고 세계경제포럼(WEF)의 금융시장 후진성 지적에는 즉각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이중적 태도는 누가 보더라도 이해가 안 간다. 안쓰럽기까지 하다.

브라질의 투기등급 조정도 그렇다. 일부에서는 ‘S&P의 저주’라는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해 가뜩이나 불안한 브라질 국채 투자자의 마음을 더 부추긴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새로운 평가기준과 특징,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브라질의 위험요인 등을 지적하고 국내 투자자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것이 S&P 평가를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원자재값 하락,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부패 등으로 브라질 경제는 앞으로도 난항이 예상된다. 브라질 국채 투자는 ‘균형’을 유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국면전환 모형으로 브라질 위기 재연 가능성을 추정해 보면 20% 이하로 낮게 나온다. 국면전환 모형이란 환율에 내재된 절상, 절하, 위기 구간 정보를 확률값으로 추출해 위기 가능성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S&P의 투기등급 조정도 국가부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환차손도 지금 만기가 도래하거나 환매하지 않으면 장부상 가치일 뿐이다. 보편적인 경기순환이론인 ‘키친 파동’에 따르면 특정국 경기는 4년을 주기로 호황기와 침체기가 반복된다. 만기가 5년 이상 설정돼 있으면 헤알화가치가 회복할 때 빠져나올 수 있는 방안을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