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In Life] 시장은 진화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곳…융성하려면 언제나 시장의 몫을 늘려야

입력 2015-10-09 17:52
수정 2015-10-11 19:49
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38) 복거일 '시장의 진화'


시장은 너무나 친숙한 공간이다. 마치 공기처럼 우리는 시장이 없으면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우리가 매일 먹고, 입고, 쓰는 의식주에 이용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시장에서 거래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단 하루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버스나 지하철 등의 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책과 공연과 같은 교육문화예술과 관련된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도 역시 시장을 통해 공급된다.

이처럼 삶에 필수적 요소인 시장을 사람들은 적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시장이라는 용어를 쓸 때, 구체적 시장의 모습을 떠올리기보다는 극도로 추상화된 시장의 개념을 이용한다는 점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추상화된 시장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경제학에 대한 기본소양을 가진 사람들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그 결과 정부와 대비되는 요소로서 시장을 마치 오직 경쟁만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장으로 단순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원인으로 우리의 타고난 본능 중 어느 부분들이 시장과 잘 맞지 않는다는 사정도 있다. 농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잉여생산물이 축적되고 그 결과 교역과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1만~2만 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전 현생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 등장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은 10만~30만 년 전의 일이다. 이 기간 인간의 본성은 수렵채집을 위한 집단생활에 적합하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시장질서의 근본을 이루는 재산권이나 자유거래와 같은 특질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시기에 형성된 본성들을 억누를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외에 오래전부터 상업을 경시하는 역사적 전통, 사회에 만연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태도, 과학과 기술 발전에 대한 무관심 등이 적대감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시장의 진화’는 바로 이런 시장에 대한 대중의 적대적 태도를 바꾸기 위해 집필되었다. 시장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고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저자는 시장을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는 시장을 ‘진화에 가장 친화적인 기구’라고 부른다.

실제 시장은 수많은 사회적 요소와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그 과정을 통해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마치 생물학적 진화를 살펴볼 때 단일 조상으로부터 수많은 생명체가 파생하는 것처럼, 시장도 끊임없는 경쟁과 모방과정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한다. 그리고 우??진화하는 시장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다양성 덕분에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시장이 ‘본질적으로 지식을 찾고 조직하는 장치’라는 점도 강조한다. 이것은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하이에크의 경쟁은 ‘발견적 절차’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시장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은 다양한 지식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런 지식들이 모두가 다 유용하고 타당한 것은 아니다. 경쟁이라는 거름과정을 통해 지식은 검증되고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진다. 이렇게 “경쟁을 통해서 발견된 보다 나은 것들이 퍼지는 현상”이 바로 진화이며, 이러한 원리는 비단 생물학뿐만 아니라 시장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고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경제 환경의 진화’는 가장 근본적 문제인 시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시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장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로 시작해, 동반성장이나 자본주의 4.0과 같은 용어들이 내포하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대체로 경제와 관련된 이러한 주장과 정책들은 경쟁을 제약함으로써 시장의 진화를 방해한다.

이 장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지식에 대한 성찰’이라는 칼럼이다. 여기서 저자는 인간의 지식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시장이 그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지식 발견 장치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규제를 통해 시장이 억제되면 지식의 발견은 그만큼 어려워지고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길은 더욱 요원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장에서 얻어진 지식을 중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장은 ‘정치 환경의 진화’이다. 이 장도 역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로 시작해 박정희, 김대중과 같은 주요 정치인의 공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해관련국인 미국, 중국과의 문제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주목할 내용은 민중주의(populism)에 대한 언급이다. 복지국가를 내세우며 각종 인기영합정책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작금의 현실에 깊이 숙지해야 할 내용이다.

3장은 ‘과학과 기술의 진화’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평소 저자의 관심분야인 과학소설과 생물학에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다. 특히 ‘진화의 맥락에서 살핀 로봇’에서 로봇이라는 개념의 탄생부터 미래 로봇의 모습, 로봇과 인류의 공진화라는 무척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지구온난화와 해프닝으로 끝난 광우병과 관련된 논의들도 이장에 담겨있다. 의료와 관련해서는 항생제와 같은 의료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명암과 그로 인한 인간 정체성의 변화와 관련된 부분들도 언급된다. 이 외에도 대리모나 혼외정사처럼 윤리적으로 첨예한 논란이 있는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체계적 학술서는 아니다. 책에 실린 칼럼들이 다루는 주제들은 어느 한 범주로 엮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이 혼란스럽거나 산만하지 않은 이유는 관점의 일관성이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이 모든 사회현상을 살피는 어려운 과업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긴급한 문제는 바로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누구나가 진보를 원한다는 사실에 있다. 조금의 퇴보라도 심지어 정체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끊임없이 삶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이것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 성장이고 그것은 오직 시장의 진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시장을 진화적 관점에서 살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은 진화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시장이 줄어들면, 시민들의 실험과 혁신이 줄어들어, 문화와 경제가 아울러 정체할 수밖에 없다. 융성하는 사회를 위한 핵심은 언제 어디서나 시장의 몫을 늘리는 것이다.”

송상우 < 보현한의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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