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1989년 빈폴이 처음 선보였을 때 별명이 ‘빈티 나는 폴로’였다. 미국 브랜드 폴로(Polo)와 비슷하다는, 일종의 야유였다. 하지만 빈폴은 지난해 매출 7000억원대로 성장해 국내에선 폴로를 저만치 따돌렸다. 쿠쿠가 일본 코끼리밥솥을 밀어낸 것처럼, 빈폴은 난공불락이던 폴로와 경쟁하며 급성장한 것이다.
한국 올림픽 대표 선수단복을 빈폴이 만들듯이, 미국에선 폴로가 그런 역할을 하는 ‘국민 캐주얼’이다. 말 탄 폴로선수 로고로 유명한 폴로는 1967년 랄프 로렌(76)이 창시했다. 캘린 클라인(73), 페리 엘리스(1940~1986)와 함께 아메리칸 캐주얼 전성시대를 연 미국 패션계 대부다.
랄프 로렌은 1939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벨라루스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성(姓)이 유대식 립쉬츠(Lifshitz)인데, 그는 성공을 위해 미국 주류인 WASP(백인·앵글로색슨·기독교도)식으로 개명했다.
그는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단정한 프레피룩(명문 사립고 학생복 스타일) 차림이었고, 뉴욕시립대 경영학과를 다니면서도 의류 판매원으로 일할 정도였다. 그가 디자인한 넥타이를 니먼마커스 백화점이 한목에 1200개를 사준 것이 패션사업에 뛰어든 계기였다. 1967년 폴로 상표를 달기 시작했고 이듬해 의류에도 진출했다.
당시 피케(면직물) 셔츠는 테니스스타 르네 라코스테의 셔츠를 변형한 ‘라코스테’가 인기였지만 색상이 세 가지뿐이었다. 이를 의식해 랄프 로렌은 24가지 색상의 폴로 셔츠를 선보여 선풍을 일으켰다. 화가인 부친의 색감을 물려받은 덕이다.
폴로가 인지도를 넓히는 데는 영화의 힘이 컸다. ‘위대한 개츠비’(1974)에서 로버트 레드퍼드가 폴로 의상을 입은 단정한 모습은 미국인의 로망이 됐다. 또 1986년 개점한 뉴욕 매디슨가의 고풍스런 ‘라인랜더 맨션’은 꼭 봐야할 랜드마크다.
세계 155위 부호(재산 80억달러)인 랄프 로렌은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기도 하다. 그는 “내가 파는 것은 옷이 아니라 꿈”이라고 늘 강조했다. 허름한 청바지 차림의 미국인에게 상류층의 우아함에 스포츠의 실용성을 가미한 패션을 입혔다. 귀족스포츠인 폴로를 브랜드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설적으로 전통이 미미하고 성공에 목 마른 미국인의 콤플렉스를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랄프 로렌이 (주)랄프로렌 CEO를 48년 만에 물러난다고 한다. 후임자는 폴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패스트패션 전문가다. 실적 부진에 고전해 온 폴로의 변신이 주목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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