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기부에 의존한 청년희망펀드
사실상 강제모금, 자산운영 유인 부족
선의·기부로는 청년실업 해결 못해
새 일감 찾고 고용유연성 확대해야"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정책 현안은 늘 변한다. 하지만 변하는 현안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이론은 변하지 않는다. 이론의 가치는 우발적인 잔가지를 쳐내고 당면한 문제들의 본질을 인식하게 해주는 데 있다. 인기에 취한 정치인들은 그의 정책이 미래에 미칠 결과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단기일 뿐이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제안한 청년 일자리 해결을 위한 사회적 펀드인 ‘청년희망펀드(가칭)’는 국무총리와 장관, 공공기관장, 여당 지도부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이 기부 의사를 밝힘으로써 공식화됐다. 노·사·정 대타협 분위기를 이어가고 노동개혁 성과를 가시화하기 위해 청년희망펀드 조성이 절실하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정부는 펀드에 기초해 ‘청년희망재단’을 신설하고 연말까지 재단 설립과 함께 사업 시행을 본격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청년희망재단은 청년 구직자를 지원하며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 민간 일자리 창출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 6월 기준 체감 청년 실업자는 115만명에 달한다. 체감 실업률이 23%에 이를 만큼 청년 실업 문제는 절박하다. 그렇다고 선의에 기초한 대통령과 개인의 십시일반(十匙一飯)이 고용문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민간의 자발적 기부에 의존한다지만 실제로는 선의를 앞세운 강제 모금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 참여자에게는 준조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희망재단의 기능과 역할이 차별화되지 않으면 정부 각 부처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청년 일자리 지원센터의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청년희망펀드는 공익펀드이기 때문에 원금과 운용수익을 돌려주는 구조가 아니다. 그만큼 운용수익 극대화 유인이 약하다. 원금 손실을 내지 않으려면 민간 운용이 불가피하겠지만 책임 소재 불분명과 유인 부족으로 희망펀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미소금융’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휴면예금 출연을 기초자산의 일부로 삼았기에 정책 아이디어로 치면 이만큼 참신하기 쉽지 않다. 휴면예금은 소액이기 때문에 소유자가 잊은 미청구 재산이다. 은행의 잡수익으로 처리될 휴면예금을 공익 차원에서 미소금융중앙재단에 출연하고, 재단은 이 재원을 활용해 개인신용 7등급 이하의 저(低)신용계층에 대출해 왔다. 그런 미소금융이 위기를 맞고 있다. 휴면예금의 추가 출연이 중단됐고 은행·기업의 자발적 기부가 격감했기 때문이다. 기부에만 의존하는 청년희망펀드가 지속되기는 더 어렵다. 그렇다고 취업자에게 알선료를 징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청년 실업은 일감 부족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연유된 것이다. 대기업들은 매년 고용 계획을 발표하지만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투자가 이뤄져야 고용이 창출된다. 한국의 주력 산업 노쇠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기준 국내 10대 산업 1위 기업의 평균 나이는 55세다. 반도체, 선박·해양구조물, 강판 등이 10대 수출품목에 포함된 지 38년째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신인 유망주가 20년째 나오지 않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고용이 풀린다.
노동조합은 속성상 기존 조합원의 고용 유지가 최대 관심사다. 청년 신규 고용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런 면에서 노·사·정 체제는 이해관계자에게 이해의 실타래를 풀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이해관계자들로 하여금 손을 떼게 한 것이다. 독일의 하르츠위원회는 이해관계자들을 배제한 15인의 전문가로만 구성됐다.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의 영국 보수당 정권도 노동개혁을 노·사·정 타협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 혁신, 노동을 통합해 경제장관이 책임지고 주도하도록 했다.
고용은 근로계약을 통해 기업 단위에서 창출된다. 일감과 노동시장의 유연성만이 청년 고용을 담보할 수 있다. 도덕적 선의와 기부로 고용을 해결할 수는 없다. 청년희망펀드는 실효적이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수 있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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