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늙는다는 건 罰이 아니다'에 대한 답장

입력 2015-09-25 14:50
수정 2015-09-25 18:48
(이지수 중소기업부 기자) 김광일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쓴 9월 23일자 칼럼 ‘늙는다는 건 罰이 아니다’를 읽고 다급한 마음에 펜을 잡았다.

손톱으로 꾹 눌러 패인 것처럼 갈라진 세대 간 골이 더 깊어질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다. 김 위원의 글이 50-60대 우리의 모든 부모님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의 습작 또한 청년들의 심정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마음으로 한자 한자 채워 넣었다. 여러 번 지워 닳아버린 편지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우리 아버지들에게 바친다.

:조선일보 사설 ‘늙는다는 건 罰이 아니다’에 대한 답장

아버지, 편지 잘 읽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밥벌이 할 나이가 지났는데 아직도 취업을 못해 밥 만 축내는 아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글을 쓰셨겠습니까. 임금피크제다 뭐다 아버지 또래 월급 깎겠다는 얘기로 나라가 시끄러우니 맘은 또 얼마나 불안하신지요. 예전이라면 ‘다 잘 될 꺼다’라고 응원만 해주셨을 분인데 이렇게까지 지치셨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하신 임금피크제는 저희가 하자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지목하신 그 ‘기성세대’가 추진한 정책입니다. 지금 이 정책이 오해를 부르고 있습니다. 마치 청년들이 아버지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 처럼 말이죠. 아버지들이 괜히 무엇인?큰 것을 양보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합니다. 아버지가 처음 입사했을 때 보다 정년은 3년 이상 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서로 나누는 겁니다. 어차피 저희도 30년 후면 해야 할 일입니다.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이해합니다만 저희 세대에게 불평할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자식들에게 투정하진 않으셨지요. 늙으면 애가 된다는 속담이 그래서 나왔나 봅니다.

결혼 직장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가 불만이시지요. 아버지 때는 지하 단칸방에서도 시작했는데 너희는 왜 안 되냐는 말씀이시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아버지, 제 여동생이 결혼하겠다고 사내 녀석 한명 데려왔을 때 기억하십니까. 결혼하면 어디서 살 거냐고 물으셨죠. 전세 대출받아서 조그만 원룸에서 시작할 거라니까 반대하셨습니다. 그래서 결혼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애한테 ‘징징대지 마라’고 역정 내셨죠. 근데 그 친구 지금은 다른 사람만나서 애기 낳고 잘 산다는군요. 그때 아버지가 조금만 이해해주셨어도 동생이 지금처럼 포기하고 살지는 않을 겁니다. 결혼 못하는 게 요즘 젊은 세대들만의 탓은 아니죠.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지금도 실력 있으면 사법고시 붙고 은행 들어갑니다. 그게 안 되면 벽돌은 못 날라도 주인에게 성추행 당하고 월급 떼이면서 편의점 파트타임 합니다. 다만 아버지 때와 다른 것은 ‘알바’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희망이 없으니까요. 거기서 안주하면 아버지 말씀대로 ‘살림 차려 부모님께 손주 안기기’가 어렵습니다.

리어카 끌어 사과 팔아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아버지 때는 길거리에도 기회가 있었죠. 지금은 그 기회가 제도와 사회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그 거리에 발을 담그려고 발버둥 치는 겁니다. 좀 더 나은 직장 가려고 고르고 고르다 늦어지는 이유가 그겁니다. 이게 다그치는 것으로만 해결될 일입니까.

그리고, 언제부터 저를 경쟁상대로 보셨습니까. 왜 ‘세대전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시는지요. 실전 영어로 상대방을 제압해 계약을 따내던 그 날선 눈빛은 저를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대수로 컴퓨터 작동원리를 저보다 잘 이해하시는 아버지와 겨루고 싶지도 않습니다. 못한다고 구박만 마시고 그 경험을 전해주십시오.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양놈들과 경쟁하겠습니다. 그러려고 아버지 ‘난닝구 빤쓰’ 빠는 고생시켜드리면서도 외국 나갔다 온 거 아닙니까.

투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제게 익숙지 않습니다. 자식보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뛴다고 지금같이 아이처럼 칭얼대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 아버지는 잘나가던 직장에서 나오셔야 했죠. 그때도 눈물 흘리는 어머니와 저, 어린 동생들을 다독이시며 ‘괜찮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년여 간 막일을 하시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안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자존심을 접고 후배가 운영하는 공장에 취직하셨을 때도 당당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넓은 어깨가 오늘따라 좁아 보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이런 저를 보고 화산처럼 달아오르신다면 더 아플 겁니다. (끝) /oneth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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