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미국·영국에서 떠오른 포퓰리스트

입력 2015-09-23 18:20
양준영 국제부 차장 tetrius@hankyung.com


요즘 미국 정치권의 최대 뉴스메이커는 부동산 갑부 도널드 트럼프다. 그가 대통령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할 때만 해도 정치인보다는 연예인 대접을 받았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 심지어 헤어 스타일까지 화제를 낳았다.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에 대한 혐오성 발언과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발언 등 잇따른 막말과 기행에도 여론조사 1위를 지키고 있다. “반짝하고 말겠지”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대선 후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지만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그를 흥밋거리로만 다루던 미국 언론들도 이제는 1위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증세·무상교육 앞세운 후보들

비주류 돌풍은 민주당으로까지 번졌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앞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복병으로 등장했다. 샌더스는 미국 정치권에서 보기 어려운 사회주의자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클린턴 전 장관을 압도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13일 CBS 여론조사에서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에서 클린턴 전 장관을 앞질렀다. 21일 CNN 여론조사에서는 24%에 그쳐 클린턴 전 장관(42%)에게 밀렸지만 여전히 무시 못할 후보다.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 배경으로는 거침없는 발언이 꼽힌다. 기존 정치권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이민정책 등에 대해 보수층이 듣고 싶어하는 대중영합적 발언을 쏟아낸다. 샌더스는 보편 의료, 공립대 무상교육,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급진적 공약을 내세운다.

최근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 대표로 뽑힌 제러미 코빈도 당내 비주류인 사회주의자다. 주요 7개국(G7)이자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의 제1야당 대표가 급진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은 단순한 이벤트로 넘기기 어려운 사건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이를 ‘정치적 격변’이라고 평했다.

포퓰리즘 뒤 ‘막대한 비용’

코빈은 긴축 대신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 철도·전기·가스 국유화, 무상교육 등을 주장한다. 샌더스도 무상보육, 보편 의료, 부자 증세, 대학 등록금 면제 등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닮은꼴’ 공약을 제시했다. 한국에서도 선거철만 되면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공약들이다. 심지어 트럼프까지 공화당 노선에 반하는 부자 증세와 전 국민 의료보험을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 샌더스, 코빈 세 포퓰리스트의 부상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다.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불평등 해소 주장이 민심을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보편 의료나 무상교육 등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월스트리트저?WSJ)은 샌더스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10년간 18조달러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샌더스와 코빈이 돌풍을 일으키자 정치 지형 변화를 거론하며 ‘좌파의 부활’이 시대적 요구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주장이 한국에서도 먹혀들 수 있고, 실제로 여야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대중영합적인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포퓰리스트들이 정권을 쥔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양준영 국제부 차장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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