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키우는 '관피아 방지법'] 미래부 국장, 금투협 임원으로…행자부 출신이 캐피털 회사로

입력 2015-09-22 18:09
부처 간 '낙하산 맞바꾸기'

관련분야 취업 제한 규제로 퇴직 공무원 갈 곳 못찾아
부처 간 '일자리 담합' 늘어

"현재 규제로는 정피아만 판쳐…과도한 재취업 제한 완화해야"


[ 김주완/조진형/추덕영 기자 ] 금융투자협회 IBK캐피탈 등은 금융위원회 관할이다. 기획재정부나 금융위 금융감독원 등의 관료가 퇴직 후 취업하던 곳들이다. 하지만 최근 미래창조과학부 행정자치부 등 연관이 없는 부처 출신 관료가 자리를 꿰차고 있다. 관가에서는 조만간 미래부와 행자부 산하 기관에 기재부나 금융위 공무원이 내려가는 사례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부처 간 맞바꾸기’ 식 인사가 줄을 잇고 있다.

앞서 금융위 소관인 한국자산신탁 고문과 NH투자증권 감사 자리에는 경찰청과 감사원 출신이 선임됐다. 미래부 소관인 홈앤쇼핑 임원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가기도 했다.

○공무원 간 일종의 ‘담합’

퇴직 고위 공タ坪?다른 부처 산하 기관으로 옮기는 것은 취업 제한이 덜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민·관 유착을 끊겠다며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 기준을 대폭 높였다. 지난 3월 말부터 취업 제한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해당 부처의 산하 협회와 조합도 취업을 제한했다. 2급 이상 고위직은 취업 심사 때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도 대폭 강화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런 기준에 따라 취업 심사 대상자의 업무 관련성을 집중적으로 심사하면서 “퇴직 공무원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기류가 확산됐다. 고위 공무원이 때가 되면 용퇴하고 밟아왔던 ‘관료→산하기관·공기업→협회·조합’ 코스가 세월호 사태 이후 끊긴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장급 이상 고위 관료 중 1개월 이상 보직 없이 지낸 공무원 수는 박근혜 정부 들어 지난 7월까지 200명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 때와 비교하면 두 배 수준으로 많아졌다.

정치권에서 내려온 ‘정피아’들이 잇따라 퇴직 공무원 자리를 꿰차면서 공직사회가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피해가기 위해 ‘맞바꾸기 낙하산 인사’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부처의 인사가 산하 기관으로 오는 것을 강력하게 막던 공무원들이 이제는 일종의 ‘담합’에 나선 것이다.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 교수는 “취업 제한이 강화되면서 공무원들이 우회적으로 살 길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재취업 기준 손봐야”

산하 기관들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아마추어 낙하산’ 인사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주시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요직인 자율규제위원장에 미래부 출신이 내정되면서 안팎으로 시끄럽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그나마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많았지만 요즘은 전문성과 거리가 먼 낙하산이 대부분”이라며 “직원들 사이에는 비(非)전문가가 내려오다 보니 오히려 간섭이 덜할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관료의 ‘퇴로’를 무리하게 막은 규제가 온갖 편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관피아 방지법의 부작용이 심해지기 전에 퇴직 공무원 취업 제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재구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안전, 환경 등 고도의 전문성이 강조되는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취업 제한을 완화하거나 임원 심사위원회를 이해관계가 없는 민간위원으로 구성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민간 전문가를 공직에 등용한다고 해놓고 지금처럼 퇴로를 막아 놓으면 누가 가겠느냐”며 “상급 기관 출신이어도 전문성이 있고 투명한 절차를 거친다면 적극 기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관피아 방지법

공무원의 민·관 유착과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퇴직 공무원이 공기업, 민간기업 등에 재취업하는 것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 지난해 세월호 참사 후 관련 규정이 더 엄격해졌다. 취업 제한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2급 이상 고위직의 취업 심사 때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을 ‘소속부서 업무’에서 ‘소속기관 전체 업무’로 확대했다.

김주완/조진형 기자 kjwan@hankyung.com /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