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과대학 출신의 석유화학업계 한 CEO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모교 공대 학장에게 편지를 다 보냈을까.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초공학 지식을 가르칠 교수를 확보해 졸업생의 기본소양을 높여달라는 하소연이었다(한경 9월17일자 A1, 3면 참조). 석유화학뿐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력산업이 줄줄이 위기에 직면한 데는 외부 탓만 있는 게 아니다. 공대조차 제 역할을 못 하는 내부적 요인도 크다.
이는 공대학장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서울대 등 전국 주요 대학 공대학장 10명 중 9명이 “한국의 공대가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 게 그렇다. 또 이들 중 8명은 공대가 갈수록 산업현장과 멀어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논문 실적 위주인 현행 평가방식을 꼽았다. 논문을 많이 쓰기 어려운 자동차, 철강, 기계, 금속 등은 공대 내에서도 ‘찬밥’ 신세다. 연구비도 줄고, 교수도 급감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지난해 산학협력 강화 등 ‘공대혁신’ 방안을 내놨지만 1년이 넘도록 현장에선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대 혁신이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공대가 논문이 잘 나오는 특정 분야들에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말로만 연구중심대학을 외칠 뿐 논문을 위한 논문으로 흐르면서 정작 연구성과의 사업화, 창업 등 대학의 기업가적 역할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결국 주력산업, 신산업 그 어느 쪽 수요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죽도 밥도 아닌 공대 교육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건질 산업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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