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결한 진열대 손보고 간판 디자인 확 바꿔
"큰 돈 안들이고 대형마트 버금가는 경쟁력 확보"
기업들 일일이 찾아가 재능기부 동참 끌어
[ 강경민 기자 ]
17일 오전 11시 경기 오산시의 오색시장. 조선 후기부터 5일장으로 유명했던 시장으로, 오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통시장이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상인들이 영업 준비로 분주했다. 형형색색의 간판들 사이로 주변 상점과 확연히 다른 모습의 점포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인근 상점에는 과일과 채소들이 바닥에 진열돼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의 진열대는 경사진 매대에 가지런히 배치돼 있었다. ‘금강식품’이라고 쓰인 간판 글씨는 아이보리색과 밤색, 검은색을 띤 고급스러운 느낌의 서체였다. 시장을 오가던 손님들도 신기한 듯이 연신 이 상점을 바라봤다.
인기 스마트폰 케이스인 ‘아이페이스’를 생산하는 에이스그룹은 지난달부터 이곳을 비롯한 네 곳의 청과·건어물·떡집·꽃집 가게를 대상으로 디자인 개선 작업을 실시했다. 디자인 재능 기부를 통해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주인공은 이종린 에이스그룹 대표(37). 1998년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제대 경영학과 야간과정을 다니면서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와 웹디자인 학원 등을 운영하던 그는 동료 두 명과 함께 2010년 디자인 전문기업인 에이스그룹을 설립했다. 회사는 설립 후 5년 만에 연매출 900억원을 올리고 직원 수가 280명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2011년 선보인 휴대폰 케이스인 아이페이스는 출시 1년 만에 100만개가 팔린 밀리언셀러로, 지금까지 3000만개가 판매됐다.
이 대표가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선 건 올초 서울의 한 전통시장을 우연히 찾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대형마트보다 훨씬 질 좋고 싼 과일과 생선, 채소들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채 더러운 바닥에 진열돼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착안한 건 ‘디자인 혁신’이다. 진열대를 개조해 상품을 효과적으로 노출하고, 간판을 바꾸는 등 디자인 개선과 함께 정보기술(IT) 솔루션 및 앱(응용프로그램) 배달 서비스 등 웹디자인을 도입하면 전통시장을 명품시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곳의 지방자치단체를 찾아다니면서 디자인 혁신을 통한 전통시장 살리기를 제안했지만 돌아온 건 ‘예산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결국 그는 민간 기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재능 기부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기업들도 처음엔 주저했지만, 이 대표의 거듭된 설득에 재능 기부에 나섰다. LG유플러스는 전통시장 상점에 무료 와이파이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삼화페인트는 양질의 페인트를 공급해주기로 했고, 현대인프라코어는 소방·방재 시설 지원을 약속했다. 신한카드는 카드 단말기를 무료로 설치해주기로 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전통시장 디자인 혁신을 위한 에이스그룹 산하 디자인연구소인 트라모푸코리아를 설립했다. 트라모푸는 전통(tradition)과 현대(modern), 미래(future)의 각 앞 두 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다. 7월엔 국내 1호 전통시장 비주얼머천다이징(VMD) 전문가인 이랑주 씨(43)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트라모푸코리아가 설립 후 한 달 만에 추진한 제1호 사업이 오산 오색시장 디자인 개선 사업이다. 이 소장은 디자인 개선뿐 아니라 상품 배열도 상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했다. 그는 “상품의 시각적 효과만으로도 손님들은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며 “제철상품은 진열대 앞에 놓고, 포장상품은 뒤쪽에 배치하는 게 좋다”고 했다.
시장 상인들은 큰 호응을 보였다. 이곳에서 30년째 금강식품을 운영해온 오종수 씨(53)는 “진열대와 간판 디자인 개선만으로도 이렇게 가게가 달라질 줄 몰랐다”며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손님들도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떡집을 운영하는 김종찬 씨(51)는 “지금까지 정부가 전통시장 시설을 현대화하고 주차장을 마련해주는 등의 지원을 했지만 손님 눈길을 끌기에 디자인 개선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와도 협력해 본격적인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설 예정이다. 그의 꿈은 트라모푸코리아를 전통시장 전문 디자인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그는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凰戮쳄揚?대형마트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춘 명품시장으로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산=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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