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산업부 기자) 포스코가 일본 철강사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에 영업비밀 및 특허 침해 합의금으로 조만간 거액을 지불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5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포스코는 신일철에 방향성 전기강판 제조 기술 관련 영업비밀 및 특허 침해에 대한 합의금 명목으로 3000억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또 전기강판을 수출할 때 로열티를 내고 지역별 수출 물량도 협의해 결정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신 신일철은 한국 일본 미국에 각각 제기한 관련 소송 일체를 취하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최종 합의금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이 보도대로라면 지난 5월 코오롱이 합성섬유 아라미드의 영업비밀 침해로 미국 화학업체 듀폰에 지급한 금액(2억7500만달러)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신일철은 2012년 4월 포스코가 자사 퇴직 사원을 고문으로 채용해 방향성 전기강판 제조기술을 빼돌렸다며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영업비밀 및 특허 침해 소송과 함께 약 1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미국 뉴저지주 연방법원에도 유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방향성 전기강판은 변압기나 모터 철심 등에 이용되는 강재로 신일철이 세계 시장을 독점해왔습니다. 2000년 이후 포스코가 생산을 시작하면서 현재 시장의 25%정도를 잠식했죠. 포스코는 이에 맞서 2012년 7월 대구지방법원에 채무부존재 소송을 내고 같은 해 9월 미국 특허청과 2013년 4월 한국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포스코는 몇년 째 이어진 이 소송을 올해 안에 끝내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부터 벌써 6개월째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철강 경기 침체에 시달리는 포스코로서는 불미스러운 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해온 포스코가 일본 철강사의 영업비밀과 특허를 침해했고, 내부 비리 혐의로 6개월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외 이미지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임기 절반을 넘긴 권오준 회장은 “근본부터 뜯어고치겠다”며 쇄신안을 내놓고 조직 기강다지기에 나섰지만 구호에 그치지 않겠냐는 우려가 많습니다.
사실 신일철과의 소송전은 이번 포스코의 비리 수사와도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검찰의 포스코 수사가 6개월이 지나도록 뾰족한 결론을 못 내고 있는 것에 대해 포스코 내부인과 재계 관계자들은 ‘물귀신 작전’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명을 뇌물 수수 혐의로 A를 소환하면 “나 말고 B랑 C도 그랬다”고 증언하고, B와 C를 잡아서 질문하면 “D와 E도 그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반발한다는 건데요.
포스코와 신일철과의 소송은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구지검은 2007년 포스코의 핵심 철강 제조기술을 빼돌려 중국에 팔아넘긴 혐의로 전 포스코 직원 둘을 구속했습니다. 이들은 포스코를 퇴직한 뒤 기술컨설팅 회사를 차려 중국에 기술을 유출했습니다. 이들은 사건 재판 과정에서 “우리가 중국에 넘긴 기술은 포스코의 것이 아 求?rdquo;며 “포스코가 일본으로부터 유출해 온 것이기 때문에 포스코는 우리를 기소할 자격이 없다”고 항소했습니다.
이 중 한 명은 신일철이 포스코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2012년 “포스코가 일본의 철강 기술을 빼돌렸다”는 핵심 증언자가 됩니다. 신일철은 결국 전직 포스코 직원의 폭로(?)로 포스코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기술이 원래 일본의 기술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죠. 이들은 이같은 증언을 토대로 5000페이지에 달하는 서면을 법원에 제출하게 됩니다.
소송 건 외에도 포스코의 올해 전망은 암울합니다. 올 3분기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재계 6위인 포스코는 한국거래소가 국내 자산총액 상위 10개 기업에 대해 작년 말부터 지난 10일까지 분석한 결과 시가총액 감소폭이 가장 컸습니다. 7개 상장사를 거느리고 있는 포스코 그룹은 이 기간 시총이 29조6830억원에서 21조579억원으로 29.05% 감소했죠. 상위 10개 기업집단 상장 계열사들의 시총 하락률(9.06%)보다 하락률이 훨씬 컸습니다.
하지만 포스코 내부에서는 “숫자보다 무서운 건 포스코 특유의 조직 문화”라고 털어놓습니다. 포스코가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이고, 가장 민주적인 의사결정제도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 이면에 비도덕과 비양심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죠. 모두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아무도 주인이 아닌 회사가 되어버린 포스코. 요즘 포스코를 보면 ‘영일만의 기적’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씁쓸하기만 합니다. (끝)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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