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이만규 사장, 모두 고개 젓던 갯벌 위에 한국 최고 골프 리조트 '뚝심'

입력 2015-09-15 18:30
CEO 오피스 - 이만규 에머슨퍼시픽 사장
설계 5년·인허가 3년…'기다림의 미덕' 아는 젊은 CEO

짓기만 하면 '완판'
"가족과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개발 땐 자연과 조화 가장 중시

"기다릴건 기다릴 줄 알아야"
속도가 이익인 개발사업이지만 빨리 가려고만 하면 문제 생겨

대우 다니다 '리조트 맨' 변신
주말 새벽 4시면 골프장 출근…고객들에 인사하며 인맥 넓혀
'정직·현명·부지런' 세 단어면 못할 일은 없다 자신감 얻어


[ 심은지 기자 ] 2004년 이만규 에머슨퍼시픽 사장은 경남 남해군 남서대로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 지대였다. 한여름에 모기가 들끓어 주민들을 힘들게 했다. 남해군청은 10여년간 개발자를 찾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갯벌이라 건물을 짓기가 어렵고 교통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 사장은 “바다에 골프장을 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판단했다. 10 트럭 20만대 분량의 흙으로 땅을 메웠다. 매립면적이 99만㎡(약 30만평)에 이르고 매립기간만 19개월이 걸렸다. 2006년 1월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가 그렇게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해안 골프장에 스파 등 부대시설을 결합한 종합리조트였다. 분양권은 1년 만에 모두 팔렸다. ‘여행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월드트래블어워드(WTA)에서 8년 연속 한국 최고의 골프 리조트로 꼽혔다.

영업과장 맡아 혼자 200억원 매출

이 사장이 리조트사업을 시작한 건 아버지 이중명 에머슨퍼시픽 회장의 영향이 컸다. 충청도 일대에서 세종에머슨클럽 등 골프장 세 곳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분에 또래에 비해 골프장 환경에 익숙한 편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대우였다. 1997년 입사해 (주)대우와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경영관리팀)에서 3년간 재무업무를 담당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현금흐름이 나빴던 대우는 초토화됐다. 어떤 경우에도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다는 철칙은 그 시절에 세웠다. 이 사장은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세종에머슨 영업팀에 들어갔다.

‘지나치게 과묵하다’는 얘기를 듣던 그가 영업팀 과장을 맡자 주변에선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는 1년 만에 1억원짜리 회원권을 200여개나 파는 수완을 발휘했다. 특별한 노하우는 없었다. 주말마다 새벽 4시에 골프장으로 출근해 고객들의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해서 얼굴이 익숙해진 한 명에게 회원권을 팔았고, 그 회원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200여명을 모집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정직하게·현명하게·부지런하게’라는 세 단어만 마음에 품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2004년 1월 코스닥 상장사 에머슨퍼시픽(옛 엠씨타운)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리조트사업을 시작했다. 콘도나 골프텔처럼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영화 007시리즈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머무는 리조트 같은 최고급 휴양지를 머릿속에 그렸다. 첫 번째 사업인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가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치면서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금강산 사업 난관…“잃은 만큼 얻었다”

두 번째 사업은 ‘금강산 아난티 골프&온천 리조트’였다. 앞쪽으로 해금강이 흐르고 뒤편으로 금강산이 둘러싸고 있는 금강산 관광지구 고성봉 일대를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세계 유수의 관광명소를 둘러본 이 사장이지만 처음 금강산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감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회라고 여겼던 금강산 리조트는 성장세를 타던 에머슨퍼시픽의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됐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2008년 개관하자마자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에머슨퍼시픽 주가가 급락했고 ‘남북경협 테마주’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이 사장은 금강산사업에 대해 “잃은 만큼 얻었다”고 돌아봤다. 금강산 덕분에 자연과의 조화에 대해 임직원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아난티’였기 때문이다. 아난티는 에머슨퍼시픽의 고유 브랜드다.

에머슨퍼시픽은 현재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 등을 짓고 있다. 이들 리조트는 아난티라는 브랜드를 바탕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다. “시간이 흐르면 시설은 노후되기 때문에 인공적인 시설이 아닌 자연이 리조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설명이다.

아난티 서울, 설계만 5년

이 사장은 리조트 개발자를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하곤 한다. 수십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뤄야 하듯이 다양한 요소를 전체로, 또는 부분으로 살려나갈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지 선정부터 설계, 토목, 건축, 인테리어, 분양, 운영까지 모든 일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합니다.”

다음달 문을 여는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은 설계에만 5년이 걸렸다. 건축, 인테리어, 조명, 조경 등 각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가 머리를 맞댔다. 인허가 과정도 3년이나 걸렸다. 리조트를 짓고 있는 경기 가평이 상수도 보호구역이었기 때문이다. 리조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동산 개발사업은 빠르게 진행할수록 이익이다. 이 사장도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직원들에게 항상 ‘기다려야 하는 건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다려야 할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난티는 국내 리조트업계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에어컨 없이 맑은 공기가 들어오게 하는 설비를 마련하고 객실을 다양한 콘셉트로 나누는 등의 아이디어도 에머슨퍼시픽이 새로 시도한 것이다.

이 사장은 “고객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게 에머슨퍼시픽이 추구하는 목표”라며 “비록 골프는 잘 못치지만 회사는 1등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핸디캡에 대해선 ‘백돌이’라고 대답했다.

■ 이만규 사장 프로필

△1970년 서울 출생 △1989년 명지고 졸업 △199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96년 공군 중위 제대 △1997년 (주)대우 자금부 입사 △1998년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 경영관리팀 △1999년 대우그룹 퇴사 △2002년 대명개발(현 세종 에머슨 컨트리클럽) 이사 △2004년 에머슨퍼시픽 대표 △2011년 중앙관광개발(현 에머슨골프클럽) 대표 △2011년 아난티클럽 서울 대표 △2013년 에머슨부산 대표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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