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불법 도박의 방조자들

입력 2015-09-15 18:20
스포츠계도 오염시키는 불법 도박
정부 복권사업 줄여 단속 강화하고
통신사도 불법 메시지 책임 차단을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


10여년 전 필자는 대학 체육위원장을 맡았다. 후원금 모금이 주요 임무였다. 비가 새는 실내 농구장, 맨땅 축구장, 전용버스도 없는 외딴 교외야구장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즐비했다. 선수를 잘 먹이는 것도 중요했다. 사방에 연락해 저녁 식사 후원을 받았다.

오전에 부탁하면 그날 저녁을 맡겠다는 후원자도 있었다. 외출 나간 선수까지 연락해 불러 모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휴대폰이 없는 선수가 문제였다. 할 수 없이 필자 명의로 개통해 빌려줬다. 그때 돌려받은 휴대폰을 지금 쓰고 있는데 당시 누군가 불법 스포츠 도박에 사용했던 모양이다. 10년 넘은 지금도 꼬드기는 문자가 줄기차게 날아든다. 불법 도박 뉴스가 뜨면 더 많이 온다. 걱정 말라는 듯 ‘안전 최우선, 해외 운영’이라는 문구도 첨가된다. 발신자 번호도 앞자리 ‘1115’ 뒷자리 ‘5000’ 등 범상치 않다.

로또와 스포츠토토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과 2001년에 각각 개시됐다. 로또는 주택복권 등 기존 복권사업이 淪蘭?것이다. 지금도 과거 사업자가 수익금의 35%를 법정배분 명목으로 챙겨간다. 복권사업 여러 개를 하나로 통합하면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엄청난 1등 당첨금으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대행업자 선정 당시 이런 효과를 모르고 예상 매출을 적게 잡았다. 매출 폭증으로 대행 수수료가 큰 폭으로 늘어나자 사정기관이 조사에 나섰고 수수료 지급을 거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결국 대법원이 대행업자 손을 들어줬고 업자는 엄청난 수수료를 챙겼다.

로또 수익금은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관리한다. 연간 판매액은 3조2800억여원이고 수익금은 1조3500억여원이다. 스포츠토토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관리하는데 판매액 3조여원, 수익금 1조여원 규모다. 매년 6조원 넘는 복권이 팔리는데 사업비와 소득세를 감안하면 당첨금 실수령액은 3조원 미만이다. 복권을 사는 순간 원금 절반은 날아간다. 복권위원회 홈페이지를 장식한 ‘복권은 행복한 나눔’이라는 홍보를 돈 잃은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소득층은 복권을 외면한다. 서민층이 주로 털린다. 일부 생활보호대상자도 복권에 매달린다. 복권으로 조성된 3조원은 그야말로 ‘부자 면세, 서민 폭탄’이다. 수익금을 기금으로 치장해 자의적으로 배분하지 말고 일반회계에 편입해 제대로 써야 한다. 과거 복권을 운영한 기득권에 대한 법정배분도 재검토돼야 한다. 지난 주말 발표된 20% 범위 내의 성과평가 가감조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부가 홍보에 거금을 쓰면서 복권 판을 키우자 불법 도박업자도 고율 당첨금을 내세우며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뛴다. 정부 복권사업을 줄여야 불법 도박 단속의 명분이 선다. 우선 지역분할로 단위별 규모?축소해야 한다. 전국을 서울권·중부권·남부권으로 3등분해 단위별 1등 당첨금을 낮춰야 한다. 토토도 스포츠 활성화라는 본래 취지에 맞게 경기장에서만 판매해야 한다.

운동선수는 승부 예측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스포츠 도박에 넘어간다. 악덕업자로부터 승부 조작 유혹도 받는다. 축구 공격수는 골 넣는 조작이 어렵고 골키퍼도 자신의 성적과 직결돼 일부러 져주기 어렵다. 수비수가 상대편 공격수를 슬쩍 놓쳐줄 여지는 있다. 야구는 볼 컨트롤 주체인 투수가 유혹 대상이다. 농구는 패스, 슛, 반칙이 모두 활용될 수 있어 유혹에 가장 취약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군복무 시기가 함정이다. 축구선수가 집단으로 적발됐고 LG 야구팀 신참 투수가 희생됐다. SK 농구팀 간판스타도 군복무 시절 행적 때문에 위기다.

불법 도박 메시지는 보이스 피싱과 함께 통신사가 책임지고 차단해야 한다. 통신사마다 119 형태의 긴급신고를 운영해 불법 도박에 이용되는 전화는 즉시 정지시키고 수사기관에 통보해야 한다. 불법 도박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선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정부와 통신사가 장기간 방치한 책임도 작지 않다. 젊은이를 실족시키는 것은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질 만큼 경계할 일이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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