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첩첩산중] 일반해고·임금피크·제조업 파견 다 빠진 정부 노동개혁안

입력 2015-09-13 18:09
'노동개혁 5대 입법' 국회 가면 더 문제

"금형·단조 등 인력난 겪는 뿌리산업엔 파견 허용"
노사정 의견 접근했는데 정부안은 되레 후퇴
경영계 "야당과 협상 과정 노동경직성 심화 우려"


[ 강현우 기자 ] 정부가 제조업 파견 허용 등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핵심 안건을 빼고 ‘5대 노동개혁 법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부와 새누리당이 입법을 통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동계와 야당 등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해 민감한 사안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의 형식적인 성공만을 위해 노동계에 유리한 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조업 파견 허용 무산될 수도

정부가 마련 중인 ‘5대 법안’에는 근로시간 단축, 실업급여 강화 등 사용자보다는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많이 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가 그동안 노동개혁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저성과자 공정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 두 의제는 정부 행정지침으로 추진된다. 재계는 “행정지침으로는 법적 다툼 여지가 많기 때문에 법제화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 정부 입법안에도 사용자 의견이 대부분 무시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이다. 재계는 그동안 제조업에도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파견 기간 제한(2년)도 없앨 것을 요청해 왔다. 미국 일본 독일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제조업 파견을 허용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선 제조업체가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 조절 수단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정부 움직임과는 달리 노·사·정 협의에선 금형·단조 등 핵심 뿌리산업이면서 인력난을 겪는 기업에 파견을 허용하는 수준의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까지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에는 이 내용이 빠지고 ‘고령자·고소득 전문직에 파견을 허용한다’는 내용만 들어가 있다고 재계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부처 간 협의를 진행 중이며 노·사·정 논의에 따라서도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도 부담만 커져”

통상임금 범위를 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지난 4월 노·사·정 합의 수준에 비해 후퇴했다.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이탈로 협의가 중단되기 직전 노·사·정은 통상임금 범위를 일률적으로 법률에 담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노사가 합의해 통상임금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정부 입법안은 ‘소정 근로에 대한 대가성’, ‘정기성·고정성·일률성’ 등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수십년간 통상임금 범위를 노사 합의로 정해온 관행이 대법원 판결로 뒤집히는 바람에 수많은 기업이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며 “분쟁 소지를 줄이기 위해 통상임금 범위를 노사 합의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시간 단축도 근로자에 유리할 뿐 기업 측에선 얻을 게 없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현행 주 68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되 기업 규모별로 2017년부터 4년간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근로시간 제한이 없는 특례업종은 26개에서 10개로 줄이기로 했다.

재계에선 중소기업 인력난 등을 이유로 유예 기간을 6년으로 늘리고 특례업종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안은 또 생명·안전과 관련한 핵심 업무와 안전·보건관리 업무 등에 기간제 근로자를 원칙적으로 쓰지 못하게 했다. 계약직 근로자가 대부분인 항공·해운업계에선 “사실상 모든 업무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핵심 빠진 노동개혁 법안”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은 35세 이상 근로자가 희망할 때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여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대표의 동의가 있을 것’이라는 조건을 추가해 활용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렸다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정부 안은 기간제 근로 기간이 2년을 넘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제한하기 위해 2년 내 3회까지만 계약 갱신을 인정하도록 했다.

또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실업급여 지급 수준을 실직 전 임금의 50%에서 60%로 상향하고 지급 기간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통상적인 출퇴근 시 발생한 재해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5대 법안에 핵심 내용이 빠진 채 국회로 넘어가면 야당과의 협의 과정에서 고용 경직성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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