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중독의 원인

입력 2015-09-10 18:23
관계의 단절이 부르는
중독의 외로운 고달픔
홀로 고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도움 받아야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jshyeo@scourt.go.kr >


가정법원에서는 뭔가에 오랜 기간 의존하면서 지내온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알코올이나 약물, 도박, 주식투자, 음란물이나 성행위, 쇼핑, 게임, 스마트폰 등 그 대상이 참으로 다양하다.

중독은 폭력을 비롯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동반해 가족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가정법원에선 이와 관련한 사건 소송이 제기되면 누구의 잘못인지 명백히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정법원의 후견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가족 구성원, 특히 자녀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 일이 최우선시된다.

캐나다 밴쿠버대 심리학과 교수인 브루스 알렉산더는 ‘쥐 공원 실험’에서 충분한 놀이공간과 치즈, 친구들이 있는 ‘쥐 공원’에 사는 쥐와 혼자 격리돼 우리에 갇힌 쥐에게 각각 순수한 물과 마약을 탄 물을 동시에 줬다. 쥐 공원에 사는 쥐들은 순수한 물을 더 많이 마셨고, 우리에 갇힌 쥐들은 마약 물을 쥐 공원의 쥐들보다 16배 더 많이 마셨다. 그 후 57일간 양쪽 쥐에게 마약 물만 주고, 또 57일 후 다시 순수한 물을 함께 줬다. 놀랍게도 쥐 공원에 사는 쥐들은 마약 물이 아닌 순수한 물을 선택했다.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오랫동안 취재해 온 영국의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는 “우리가 삶의 무게에 억눌려 타인과 친밀한 교류를 할 수 없게 되면 결속의 본능이 충족되지 못해 안도감을 찾으려 뭔가를 갈구하다가 중독에 빠진다”고 말했다. 중독의 주된 요인은 타인과의 소통, 즉 관계의 단절이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중독의 반대말은 단순히 ‘맑은 정신’이 아니라 ‘관계’다.

상처 입은 여러 부부와 자녀들을 가정법원에서 만날 때면,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심리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를 물어본다. 그러면 대부분 “혼자 오래 고민해왔다”거나 “지인들과 상의했으니 전문가를 만나볼 필요가 없다”고 답해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의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가족 간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심리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 또 상담, 심리검사 등 관계 회복을 위한 후견적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가정법원을 찾기를 희망해 본다.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jshyeo@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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