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고용부진은 경쟁력 탓
고작 생각한 게 CEO 연봉 반납
관치 못 끊으면 성장·고용도 없어
김정호 수석논술위원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 반납 릴레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3대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결의가 자회사와 지방 금융지주사로 확산되는 과정이 자발적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일사불란하다. 또다시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꼬리를 문다.
반납률도 일사불란하다. 3대 금융그룹 회장들은 30%를 기준으로 내세웠고, 자회사 CEO와 지방 금융그룹 회장은 20%, 임원들은 10%다. 더 내고 덜 내고도 없다. 지방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20%로 정하면서 자신들의 연봉이 대형 금융지주사 회장들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이라는 주석까지 달았다. 실소가 절로 터진다.
금융위원회는 연봉 반납이 청년 고용에 매우 바람직하다며 환영의 뜻을 즉각 밝혔다. 과거처럼 4~5개월짜리 시늉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언론을 통해 내놓았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CEO들이 반납한 연봉은 어떤 형태로든 청년 고용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걸 탓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금융회사 CEO들과 금융관료들의 발상이다. 은행권의 현재 고용 규모는 11만8000명이다. 외환위기 직전보다 무려 3만명 넘게 줄어든 수준이다. 은행산업이 청년 실업의 블랙홀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 하지만 앞으로 고용 여건이 개선될 조짐은 없다. 성장이 없는 곳에 고용이 있을 리 없지 않는가. 청년 실업 해소에 모두가 앞장서 달라는 대통령의 채근에 성의라도 표시하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을까. 은행 CEO들과 그들을 쥐락펴락하는 금융관료들이 생각해낸 게 고작 연봉 반납이다.
모든 정권은 금융개혁을 앞세웠다. 하지만 결실은 없다. 노무현 정부는 금융허브를, 이명박 정부는 금융중심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은 여전히 변방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금융이라고 다르지 않다.
기억해보라.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취임하면서 창조금융과 금융개혁을 앞세웠지만 그가 내놓은 첫 정책은 시장경제 원칙을 철저히 배제한 소위 안심전환대출이었다. 비싼 금리를 싼 금리로 바꿔준다는, 그것도 선착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정책 말이다. 정부가 금리를 깎아주고 고정금리로 갈아타라고 일러준다. 금융사 CEO는 꿀 먹은 벙어리다. 하는 일이 없으니 연봉을 반납하라는 걸까. 예대마진으로 밥을 먹는 은행들의 수익성은 엉망이 되고 주주들만 바보가 됐다. 경제민주화와 상생 얘기가 나오면 금융의 기본원리는 금세 꼬리를 감춘다. 관치와 포퓰리즘에 경쟁력은 늘 그 모양이다.
은행은 여전히 이자수익에 목을 건다. 미국 은행은 비이자수익이 절반을 넘고, 일본은 40%를 넘는다. 그러나 우리는 10%대에 불과하다. 대손충당금을 얼마나 쌓느냐에 은행 수익이 좌우되는 저급한 수준이다. 글로벌화는 한 걸음도 못 나갔고, 핀테크(금융+기술) 같은 새로운 환경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한국 금융시장의 성숙도가 세계 80위라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서가 결코 놀랍지 않은 이유다. 아프리카의 우간다나 가나 수준이다.
CEO의 연봉 반납이 고용제도 개선을 위한 선제적 대응이거나 금융권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정부의 청년 실업 해소 대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성의 표시라면 은행산업에 기대할 것은 더 이상 없다. 산업 자체가 성장해야 고용이 일어나는데 근본 해법은 누가 고민하는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선진국만 뛰어논다는 법은 없다.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을 보라.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성장해 세계 굴지의 금융그룹이 됐다. 제조업까지 모두 합쳐 세계 43위 기업이다. 이 회사의 고용이 18만6000명이다. 우리 은행권 전체 고용보다 무려 7만명이나 더 많다.
“글로벌 경쟁력, 이제 금융 차례입니다.” 금융위가 정한 금융개혁 슬로건이다. 그게 진심이면 금융을 건드리지 말라. 반도체, K팝과 한류드라마는 관료들이 몰랐던 덕분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금융기업이 본업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창조금융이다. 그게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지름길이다.
김정호 수석논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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