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벤처 산전수전 (1) 이영 여성벤처협회장(테르텐 대표)
"여성 CEO 못 모시겠다" 면접 포기한 구직자도
여성벤처 10년새 8배 늘어…女力 커졌지만 차별도 여전
투자·성장 사다리 역할할 것
2000년대 초 국내에 벤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혁신과 도전정신으로 창업에 나선 수많은 벤처인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유독 여성 벤처인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입견에 시달렸다. 이같은 환경에서도 이들은 살아남았다. 여성벤처기업은 2005년 308개에서 지난 7월 현재 2491개로 10년 만에 8배로 늘었다. 한국경제신문은 ‘여성벤처 산전수전’을 마련, 여성 벤처인들의 기고를 통해 이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하고자 한다.
“제가 무서우세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 대기업 이사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참다가 끝내 나온 말이었다. 함께 점심을 먹자는 제안을 하자 그는 사업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직원을 데리고 나왔다. 여성 기업인과는 사업 논의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식사 내내 사업과 관련한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여성 기업인은 드세다는 편견도 느꼈다. 뼈 있는 농담을 들은 그는 그냥 멋쩍은 미소만 보였다.
창업 이후 부딪힌 편견의 벽
딸만 셋인 집안에서 장녀로 컸고 여중, 여고를 나왔기에 성차별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00년 사업을 시작하고 나선 달랐다.
창업하자 주변 어르신들은 황당한 조언을 하나 해주셨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에 호텔에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팽배했던 2000년대 초 어르신들은 불필요한 구설에 오를까 걱정하셨다.
사업을 하면서 부딪힌 편견의 벽은 더욱 높았다. 임원을 뽑는 최종 면접에서였다. 한 면접자는 “여성 기업인을 모신 적이 없다”며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겠다”고 했다. 어떤 기관에선 실사를 나왔는데 회사 상황은 살펴보지 않았다.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실제 대표인지 이름만 걸어 놓은 대표인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사업의 길에 들어선 이후 지난 15년간의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여성 기업인이 공감할까? 나의 경우보다 더 심한 편견과 보이지 않은 벽에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기술 개발로 승부수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았다. 편견에 맞서 기술 개발에 힘썼다. KAIST 대학원에서 암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를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사진이나 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 복제와 무단 사용을 막는 디지털저작권관리(DRM) 기술을 개발했다. 관련 특허도 20여개 등록했다.
그러자 사업환경이 확 달라졌다. 청와대, 국회뿐 아니라 삼성전자, SK텔레콤, 다음카카오 등 대기업도 고객사로 확보했다. 미국 정보 茱?IT) 전문업체 레드헤링이 선정한 아시아 100대 기업(2006년), 세계 100대 기업(2007년) 등에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엔 3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여성벤처 성장 발판 마련할 것
여성벤처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여성벤처협회장에 취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코스닥 상장사 중 여성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는 14개로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에서도 최상위 여성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능력 있는 여성들이 창업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의 발전뿐 아니라 여성벤처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싶다. 그리고 함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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