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때 '중동 나눠먹기'
영국·프랑스, 종파 등 무시 국경 결정
[ 임근호 기자 ]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한창이던 1916년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이 끝나면 중동지역을 나눠 갖기로 하고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협상을 주도한 영국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의 이름을 따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 불리는 이 합의는 중동 분쟁의 씨앗이 됐다.
현재 유럽 국가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는 ‘중동 난민사태’를 잉태한 것도 이 협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이 날린 부메랑이 100여년 만에 돌아온 것”이란 평가도 이어진다.
현재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영토는 1500년대부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모두 오스만제국(현재 터키)에 속해 있었다. 오스만제국은 한때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발칸반도, 중동에 걸친 대제국이었지만 1800년대 들어 서구 열강에 하나씩 영토를 빼앗겨 1914년엔 지금의 터키와 중동지역으로 영토가 축소됐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손잡았던 오스만제국은 결국 연합군에 패했고, 중동지역은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손에 들어갔다.
사이크 뵉픔?협정에 따른 경계선은 종파 갈등이나 부족(部族)성이 강한 아랍 무슬림의 역사·문화·종교적 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 프랑스가 기독교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시리아에서 레바논을 떼내고, 영국은 아랍 민족에게 돌려주기로 했던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에게 주면서 중동지역 갈등은 증폭됐다.
지난해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사에서 독일 슈피겔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두고 “참으로 낯부끄럽고 뻔뻔한 땅따먹기”라며 “지금의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의 극단주의 세력, 레바논의 종파·민족 충돌은 제국주의 열강이 멋대로 그은 국경선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부족 간 평화 공존을 이뤄내지 못한 중동 정부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 협정이 이후 혼란의 시발점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연합(EU)이 지난 5월 추진했다가 무산된 ‘난민 분산수용 할당제’로 예상되는 수용 난민 수와 지금 유럽 각국이 실제 수용한 난민 수를 비교한 결과 프랑스와 영국이 기준에 못 미쳤다고 지난 4일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두 당사국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