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의 풍광, 도야마현·기후현
[ 고경봉 기자 ] 가즈노미야 왕녀는 가마를 타고 마고메주쿠 역참 마을을 지나며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약혼자를 두고 쇼군에게 시집을 가야 했던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교토를 떠나 에도에서 펼쳐질 새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을까. 다테야마(立山) 첩첩산중의 고카야마 마을로 유배 왔던 오사요는 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던졌을까. 그녀가 마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춤과 노래는 지금도 그 삶을 닮아 그렇게 구슬픈 것일까.
일본 혼슈의 중북부를 관통하는 도야마현과 기후현은 북알프스의 고봉과 협곡에서 뿜어나오는 화려한 풍광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굽이굽이의 마을을 따라 오롯하게 남아있는 에도 시대의 이야기다. 그만큼 여행길도 다채롭다. 아기자기한 전통 마을에 빠져있다가 조금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웅장한 대자연이 펼쳐진다.
동화 마을 같은 고카야마, 시라카와고
언뜻 보면 북유럽의 옛 마을을 옮겨다 놓은 듯하다. 삼나무 숲을 뒤로 하고 다소곳이 둘러앉은 초가집들은 멀리서 보면 앙증맞기까지 하다. 도야마현의 고카야마, 기후현의 시라카와고. 이 두 마을은 수백년 된 산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겨울에는 두꺼운 초가 지붕을 가파르게 세워 폭설에 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했다. 그 독특한 모양이 손을 합장한 듯해 ‘합장촌(合掌村·갓쇼무라)’이라 불린다. “스머프 마을 같다”는 동반자의 표현에 미소가 절로 난다.
이곳은 일본에서 네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1~3번째로 등록된 호류지, 히메지성, 교토 전통거리 등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반면 고카야마, 시라카와고는 대도시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의외로 관광객이 적다. 교토나 도쿄의 화려한 메이지 건축물, 북적이는 인파와는 다른 소박함과 호젓함이 좋다. 산책하듯 여유로운 마음으로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합장촌은 과거 워낙 오지여서 유배지 역할도 했다. 17세기 말 권력 암투 과정에 우연히 연루돼 고카야마로 유배온 술집 접대부 오사요가 이곳 주민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고 한다. 고카야마에서 일본 전통민요와 춤사위가 어우러지는 고키리코 공연이 볼만하다. 도야마 시내에서 고카야마까지 차로 한 시간 거리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이튿날 다테야마에 올랐다. 일본 사람들이 후지산, 하쿠산과 함께 3대 명산으로 꼽는 곳이다. 도야마현, 나가노현, 기후현을 따라 장장 90㎞에 걸쳐 3000m급 고봉들이 휘돌아 뻗어 나간다.
도야마현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와 기후현 북알프스는 한국 등산객들에게도 유명한 코스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출발지는 도야마 쪽 다테야마역. 이곳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7분 정도를 올라간 뒤 비조다이라에서 트롤리 버스로 갈아타고 무로도로 향한다. 버스에서는 왼쪽에 앉는 게 좋다. 버스가 숲을 통과하면 광활한 미다가하라 고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눈이 쌓인 4~6월 꼬불꼬불한 도로 양쪽으로 20m의 설벽이 만드는 장관이 압도적인 볼거리지만 탁 트인 고원 능선을 따라 야생화들이 흐드러지는 여름이나 단풍이 고원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에도 눈을 떼기 힘들다.
고원을 가로지르면 버스는 종점인 무로도에 도착한다. 이곳이 다테야마 등반의 출발지다. 하지만 시간이 짧은 여행객을 위한 트레킹 코스도 아주 즐겁다. 만년설 사이에서 에메랄드색으로 빛나는 미쿠리가케 호수, 유황 냄새 가득한 지코쿠 계곡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가을에 도야마현을 찾는다면 구로베 협곡을 빼놓으면 안 된다. 86㎞의 구로베 강이 만든 일본 최대의 협곡이다. 우나즈키역에서 앙증맞은 도로코 열차를 타면 불타는 듯한 단풍숲과 가슴 뚫리는 협곡의 풍경을 왕복 3시간여 동안 만끽할 수 있다. 중간에 가쓰쓰리역에 내려 뜨거운 온천 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쉴 수도 있다.
기후현의 역참마을 마고메주쿠
에도 시대 일본 서쪽의 교토와 동쪽의 에도(도쿄)를 잇는 5대 가도 중 하나였던 나카센도는 기후현의 역참마을 마고메주쿠를 지난다. 540㎞의 길을 오갔던 여행자들은 중간중간의 역참마을에서 피곤을 달래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마고메주쿠는 첩첩산중에 자리한 덕에 전쟁과 개발을 피하고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지금도 고풍스럽게 처마를 드리우고 먼 길을 찾아온 여행자를 반겨준다. 마을 길을 걷다 지칠 때쯤 중간중간에 있는 빙수 가게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공주가도’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1861년 일왕의 딸인 가즈노미아 왕녀가 쇼군에게 시집을 갈 때 3만여명의 행렬을 이끌고 이 길을 따라 떠나면서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에도의 분위기를 더 느껴보고 싶다면 작은 교토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기후현 다카야마를 둘러보는 게 좋다. 에도 시대 관청이었던 다카야마 진야를 비롯해 일본 전통 거리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이곳만은 꼭!
도야마현과 기후현은 온천으로 이름이 높다. 이곳에 온다면 꼭 들러봐야 한다. 기후현 중부 게로시에 있는 게로온천은 구사쓰, 아리마 온천과 함께 일본의 3대 온천 지역으로 불린다. 역 주변 료칸과 호텔이 대부분 온천을 갖추고 있다. 길가 분수에서도 뜨거운 온천수가 퐁퐁 솟는 걸 볼 수 있다. 도아먀현에서는 우나즈키 온천이 유명하다. 도로코 열차의 출발지인 우나즈키 시에 있다. 구로베 협곡의 찬 공기를 쐬고 난 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나도 모르게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된다.
도야마현·기후현=글·사진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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