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 씨 소설 '우리는…' 출간, "비정상적인 가족 통해 인간 내면 들춰냈죠"

입력 2015-09-03 18:35
[ 박상익 기자 ]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소설가 정용준 씨(34·사진)는 비슷한 연배의 작가군에서도 개성 있는 이야기 구조를 지닌 작가로 평가받는다. 최근 출간된 그의 신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문학동네)는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하면서 폭력과 증오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첫 번째 수록작 ‘474번’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나서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와 그를 상대하는 교도관의 이야기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도 태연해 보이는 남자의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독자는 교도관과 남자의 대화를 통해 그의 인생을 짐작할 뿐이다. “제 살인은 어떤 의미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폭우가, 눈덩이가, 번개가, 성난 곰이 인간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그러합니다. 심지어 저는 가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내게 주어진 과업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21쪽)

‘474번’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은 표제작인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와 ‘개들’이다. 주인공은 폭력적인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의 주인공은 어머니를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온 아버지, 신장 기능을 상실해 투석기 신세를 진 채 “그래도 우린… 혈육이 아니냐”고 말하는 남자 앞에서 쩔쩔맨다. 식용 개를 공급하는 농장 안에서 벌어지는 부자의 이야기를 그린 ‘개들’은 폭력에 길들여진 자식이 아버지에게 폭력으로 복수하는 장면을 섬뜩하게 그렸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가족사는 비극적이고 우울한 정서를 담아내며 삶의 씁쓸한 맛을 떠올리게 한다.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정용준의 소설로 읽은 삶의 내용은 죄 자체”라며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또한 반복되는 불편함을 견디면서 우리는 각자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씨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이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 힘도 없는 문장 한 줄과 허구의 이야기가 나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환상,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 내 곁에 서서 말을 들어주고 종종 대화도 나눈다고 믿는 망상과 어리석음이 좋다.” 소설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도 쓰는 자와 읽는 자가 바뀐다고 믿는 젊은 작가의 앞날이 기대되는 소설집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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