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왜곡하는 '재벌 개혁론'] "이중삼중 규제로 대기업 묶어놓고…노동개혁에 물타기"

입력 2015-09-03 18:32
전경련 보고서…정치권·노동계 주장 정면 반박


[ 서욱진 기자 ]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중국발(發) 경제 쇼크와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등 악재투성이다. 지난달 수출이 14.7% 감소하는 등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으로 기업들의 속앓이는 커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 휴대폰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타격이 심해 국내 제조업이 이대로 주저앉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과 노동계에선 난데없이 ‘재벌개혁’을 들고 나왔다. 다분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에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일 ‘우리나라 경제위기 현황과 재벌에 대한 오해’란 보고서를 내고 “재벌개혁 주장은 경제 활성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고용과 투자를 늘리려면 노동개혁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노동개혁보다 재벌개혁이 먼저’라는 주장을 네 가지 사안별로 나눠 조목조목 반박했다.

(1) 사내유보금 풀어 고용·투자 늘려?한다?
사내유보금은 회계상 개념…'쌓아둔 돈' 아니다

전경련은 ‘사내유보금을 풀어 고용·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내유보금은 대차대조표의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을 합한 것이다.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서 배당 등을 하고 남은 것이고, 자본잉여금은 액면가 초과 주식 발행 등 자본거래에서 생긴 차익이다.

즉 사내유보금은 회계상 개념일 뿐, 기업이 ‘쌓아둔 현금’은 아니다. 상당 부분은 이미 투자 등 경영 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683조원이지만, 이 중 현금과 단기금융상품 등 현금성자산은 118조원에 불과했다. 한국 비(非)금융 상장사의 2012년 총자산 대비 현금성자산 비중은 9.3%로 주요 8개국(G8)의 22.2%, 유럽연합(EU)의 14.8% 등과 비교했을 때 낮은 수준이다.

따 라서 사내유보금에 과세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전경련은 강조했다. 홍성일 전경련 재정금융팀장은 “사내유보금 과세는 근로자가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이미 집과 자동차를 구입했는 데도 또다시 세금을 내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2) 청년의무고용할당제로 청년 일자리 늘린다?
대기업 취업 준비자만 양산…中企 인력난 부채질

청년의무고용할당제는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작년부터 내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의무 고용을 달성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노동계는 이 제도를 대기업에 확대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에서다.

전경련은 그러나 취업준비생들의 대기업 선호도가 높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에까지 청년의무고용할당제를 확대 적용하면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철행 전경련 고용복지팀장은 “대기업 취업준비생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더 심해질 것”이라며 “비(非)청년 연령층의 실업률이 상승하고 구직난이 심각해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의무 고용 기간이 끝나는 2~3년 후에 청년 채용이 급격히 줄어들어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해지는 부작용도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년에 대한 채용 우대는 청년이 아닌 구직자들에 대한 차별로 볼 수 있어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년층의 고용 불안과 근로조건 악화도 가져올 수 있다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3)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개혁 필요하다?
순환출자 해소·내부거래 축소 속도 높여

전경련은 롯데그룹의 滑┛?경영권 분쟁 등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경제민주화 이슈가 불거지면서 순환 출자와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 등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순환 출자 기업 수는 2013년 4월 9만7658개에서 지난해 7월 483개, 지난 4월 459개로 대폭 감소했다. 총수 지분율이 높은 기업의 내부거래 비중도 2012년 25.2%에서 지난해 13.9%로 떨어지는 등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있다.

또 상법상 자기거래 요건 강화,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 부당이익 제공 규제, 분기별 임원 보수 공시 등 다양한 규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만약 기존 순환 출자까지 해소하도록 강제하면 10대 그룹은 최소 14조6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창출 여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4) 원·하청 규제 강화로 고용 늘린다?
하청업자 보호 규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

전경련은 원·하청 관계에 대한 규제 강화로 고용을 늘리겠다는 발상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청업자 보호를 위한 원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규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강력한 수준으로 도입돼 있기 때문이다.

기존 공정거래법상 규제 외에도 2013년 하도급법을 개정해 중소기업의 협상력 강화를 위해 업종별 협동조합에 납품단가 협의권을 부여했고, 납품단가 부당감액 등에 대해 과징금뿐만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가능하게 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한 원청업체의 정상적인 납품단가 인하조차도 잘못하면 부당 행위로 걸릴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원청업체들이 리스크 감소를 위해 거래하는 하청업체 수를 줄이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나친 규제가 원청업체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와 원·하청 업체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원·하청 규제를 더 강화하기보다 현행 제도의 올바른 집행과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전경련은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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