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미국 금리인상과 한국의 선택

입력 2015-09-02 18:16
워싱턴=박수진 psj@hankyung.com


[ 박수진 기자 ] 미국 중앙은행(Fed) 건물이 있는 워싱턴DC 컨스티튜션 애비뉴 20번가는 안개가 많은 곳이다. 아침이면 일대에 자욱하게 안개가 끼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건물 인근을 흐르는 포토맥 강에서 나오는 습기가 아침이면 저지대인 이곳으로 모여서 짙은 안개를 만든다. 그래서 지역명도 안개 낀 저지대, ‘포기 보텀(foggy bottom)’이다.

요즘 Fed 상황이 지명 그대로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모습이다. Fed는 현재 10년 만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인 미국이 언제, 얼마만큼, 어느 속도로 금리를 올리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제가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세계가 Fed 내부인사들의 발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금리인상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들의 말이 전부 제각각이다.

Fed 내부서도 인상 시점 논란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몇 주 전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발언이 나오자마자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충분한 근거가 있다(9월에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서로 다른 시그널이 거의 동시에 나온 것이다.

그뿐 틈求? “금리인상은 내년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부터 “금리인상이 무슨 소리냐. 지금은 오히려 추가 양적 완화에 나설 때”라는 주장까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최근 Fed 고위 관계자들을 만난 한 인사는 “금리정책 방향에 대해 물었더니 오히려 내게 ‘(금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되묻더라”며 웃었다. Fed 내부에서도 아직까지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소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ed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들고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리 결정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미국의 경제상황만 보면 9월 금리인상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경제전문가들이나 언론들도 대체로 같은 의견이다. 고용 소비 건설 등 각 부문에서 회복 기미가 뚜렷하다.

대외 변수가 문제다. 중국 쪽에서 경착륙 가능성을 이유로 “지금 금리를 올려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이달 말 미·중 정상회담도 앞두고 있다. 무시하기 힘든 변수다.

금리인상 시 한국 배려 없어

미 정치권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내년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섣부른 금리인상으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으면 집권당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재닛 옐런 Fed 의장으로서는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미 의회도 금리정책 결정 때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자칫 금리정책에서 실수를 했다가는 Fed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의회에 명분을 줄 수 있다.

Fed는 이런 여러 대외 변수를 고려해 미국을 위해 가장 적절한 시기를 골라 금리인璨?나서게 될 것이다. 한국이나 다른 신흥국들에서 자본 유출이 생길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최근 “미국의 섣부른 금리인상은 신흥국 경제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며 금리인상 연기를 권고했지만 Fed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중국발(發) 위기론이 터진 뒤에야 세계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미 금리인상이라는 큰 태풍에 대비해 부지런히 제방을 쌓고 재해 대비 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워싱턴=박수진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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