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힘든 세가지 이유
정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는 의무화 안해
법원은 통상임금 확대 등 '포퓰리즘 판결'
[ 조진형 기자 ]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설득해 노사정위원회를 복원했다.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에 가져가기 앞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 명분을 쌓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년 내내 헛바퀴다. 지난 4월 결렬 선언 이후 넉 달여 만에 다시 열린 노사정위는 시작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노동개혁의 핵심인 ‘저성과자 해고 요건 명확화’와 ‘취업규칙 요건 변경’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출발부터 원칙이 꼬여 노사 간 타협의 여지를 없애버린 정부와 정치권의 실책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이 노·사·정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정년 연장,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이른바 ‘3종 선물세트’를 노조에 미리 쥐어주는 바람에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측에는 양보할 여지를 없애버리고, 노측엔 새로 얻을 것 없이 이미 얻은 것에 대한 대가만 지급하게 하는 모양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잘못 끼운 첫 단추
노사 간 협상의 불균형은 정치권에서 촉발됐다. 국회는 2013년 4월 고령자고용촉진법 제19조를 개정하면서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정년 60세 연장 법안을 관철시킨 것이다. 노동계의 숙원 사항이던 정년 연장은 의무화됐지만 그로 인해 불어나는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임금체계 개편’은 의무화되지 않았다. 당시 국회는 19조 2항을 신설해 ‘사업장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만 규정했을 뿐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개별 사업장에 맡겨버린 것이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계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패키지로 받아들인 사안이었다. 노사정위는 2008년 “고령자의 정년 이후 고용 유지와 임금체계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는 노동계에 선물만 안겨줬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면서 불균형이 발생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국회에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패키지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제 와서 임금체제 개편 등을 요구하니 노동계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물부터 안긴 정부
노동계는 아무런 대가 없이 또 하나의 큰 선물을 받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은 7.2%(2014년), 7.1%(2015년), 8.1%(2016년)로 높아졌다. 2010년(2.75%)과 비교하면 3배 안팎 증가한 수치다. 협상 과정에서 노동계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날려버린 셈이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핵심 노동개혁 쟁점에 대한 법원의 인기영합적 판결도 노동개혁을 꼬이게 한 요인이 됐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과 관련해 ‘상여금이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경우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상여금은 노사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여겨온 관행을 부정한 첫 판결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통상임금에 대한 노사 간 자율 협상의 여지를 막아버린 잣대가 됐다.
법원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기업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은 2011년 11월 성남시 환경미화원의 초과근로 임금 소송 건에서 휴일근로에 대해선 통상임금의 100%를 가산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존에 50%를 가산임금으로 지급하던 관행을 깨고 노조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과근로 임금 부담이 늘어난 사업주는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의 요구였던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이 한꺼번에 해결된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책임한 정치권과 미숙한 정부가 합작해 노동개혁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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