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8·25합의' 응징의 힘 없이는 의미 없다

입력 2015-08-27 18:10
"원칙 지켜 받아낸 지뢰도발 '유감'
북한 위협 봉쇄할 실력·의지 없다면
'도발~합의'악순환 끊어내지 못해"

김태우 < 건양대 교수·객원논설위원 defensektw@hanmail.net >


지난 22일부터 25일 새벽까지 이어진 남북 고위급 접촉이 산고(産苦) 끝에 6개 항의 공동발표문을 생산했다. 예상했던 대로 핵심은 지뢰 도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과 한국의 ‘확성기 방송 중단’을 맞바꾸는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위기국면 전환’이라는 당면 목표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도발 악순환의 차단’이라는 더 큰 목표에 비춰 보면 정부와 군, 그리고 정치권에 남겨진 과제들도 만만치 않다.

우선 성과 측면에서 돋보인 것은 군과 청와대의 일사불란한 합작이었다. 지뢰 도발이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지자 군은 평양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원칙을 앞세우고 확실하게 군이 취하는 조치들을 뒷받침했다. 정치권은 모처럼 한목소리로 북한의 도발을 규탄했다. 국민도 뭉쳤다. 괴담들이 나돌았지만 예전처럼 심각하지 않았고,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군?응원하는 모습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겉으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비론을 펼쳤지만 내심 북한의 경거망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고, 미국은 한국 방어 결의를 과시함으로써 북한의 무력시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들이 ‘남조선의 자작극’ 운운하며 지뢰 도발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내뱉은 말들을 번복하고 유감을 표명하게 만든 배경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을 근절해 확실한 상생구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큰 목표에 비춰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정부는 이번 사태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수혜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는 박 대통령과의 기싸움에서 패배하고 국제적 이미지도 구겼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적지 않은 자산을 증식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120만 북한군을 호령하는 최고사령관의 위상을 주민들에게 각인시켰고, 북한의 젊은이들로부터 충성맹세도 받아 냈다. 앞으로도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은 ‘내부 단속을 위한 외부 긴장’을 필요로 할 것이며, 예측 불가의 젊은 지도자 손에 핵무기, 미사일, 잠수함 등 다양한 비대칭 수단들이 들려져 있음은 꺼림칙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정부와 군은 남북 간 합의도 중요하지만 힘에서 밀리면 합의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군은 북한이 비대칭 무기들을 앞세우고 일방적으로 한국을 위협하는 현재의 ‘일방적 취약성’을 불식하고 ‘상호 취약성’을 확보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그래서 응징이 필요한 것이며, 도발자에게 물리적 징벌을 가하지 않는 ‘방어’에만 의존해서는 억제가 되지 않는다. 응징을 篤〉?‘도발 원점 타격’만을 모색하기보다는 북한이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이 응징의 타깃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은 한국군이 ‘도발 시 반드시 응징하는 군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예산적 지원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해 북한의 도발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면 국민은 8·25합의에서 무엇을 받고 무엇을 주었는지 되짚어 볼 것이다. 북한은 한국 사회를 교란하기 위해 불순한 ‘대남사업’들을 벌이고 있으며, 사이버 공격과 위성항법장치(GPS) 교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은 거의 유일한 심리전 수단인 대북 방송을 포기하면서도 이런 것들을 중단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북핵 포기를 요구한 것은 더욱 아니었다. 졸지에 불구가 된 사병들의 다리를 물어내라고 고함치지도 않았다. 한국이 합의만 믿고 도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군사적 조치들을 취해 나가지 않는다면, 후세는 이번 협상을 2004년 군사회담에 이은 또 하나의 실패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태우 < 건양대 교수·객원논설위원 defensektw@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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