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절반 "김영란법 위헌성에 공감"

입력 2015-08-26 19:15
한경, 관련 상임위 여야 의원 30명 긴급 설문
"경기 죽이는 요인" 50%…부작용 알고도 통과시켜
김영란법 통과시켰던 의원들 "시행 전 반드시 보완해야" 43%

끊임없는 재개정 논란
"시행 뒤 손봐야"도 33%…헌법학자들도 "고쳐야"

위헌성·부작용 알면서…
총선 의식 재개정 미온적…"국회 직무유기" 비판 확산


[ 이정호 / 은정진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절반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위헌성 지적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26일 국회 법사위와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을 대상으로 김영란법의 위헌 논란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설문에 응답한 22명 가운데 11명(50%)은 법 적용 대상이 애초 공직자에서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영역으로 확대된 데 대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1년7개월 동안 김영란법의 기본틀을 다듬은 정무위와 지난 3월 본회의 처리 직전 법리적 문제를 심사한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이 법의 위헌성과 부작용을 알고도 명분에 쫓겨 ‘일단 통과시켜 놓고 맛?rsquo;식의 무책임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영란법이 경기를 죽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에는 설문에 응답한 법사위 정무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30명 가운데 15명(50%)이 ‘동의한다’고 했다. 김영란법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시행령 제정 작업 등을 거쳐 2016년 9월28일 시행된다.

위헌 논란이 계속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을 법 시행 이전에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국회 법사위·정무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30명 중 13명(43.3%)은 ‘시행 전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10명(33.3%)은 ‘법 시행 뒤 미비점을 손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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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관련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위헌성과 보완 필요성을 언급함에 따라 재개정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공직자·언론인·사립학교 교원과 그 배우자 등 300만여명에게 적용되는 김영란법의 불완전성과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뻔히 알고서도 명분에 쫓겨 무책임한 결정을 내리고 뒷수습은 미루는 국회가 정치적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김영란법은 2013년 8월 정부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직후부터 위헌 논란에 휩싸이며 여야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작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반(反)부패 법안으로 재조명받으며 여야 협상테이블에 올랐다. 새누리당은 국민안전처 신설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등과 함께 김영란법을 ‘세월호 후속 4대 법안’으로 분류하며 법안 처리에 속도를 붙였다.

반부패와 국가 대개조라는 명분과 여론 압박 앞에서 김영란법의 위헌성과 모호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 및 의견 수렴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 과정에서 법 적용 대상이 공직자에서 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 민간 영역으로 슬며시 확대되는 개악을 낳았다. 결국 김영란법은 지난 3월3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재적의원 247명 중 찬성 228명, 반대 4명(기권 15명) 등 92.3%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김영란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위헌소지가 있는 법을 여론에 밀려 통과시키게 됐다”며 “양심에 걸린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이 위헌성을 알고도 김영란법에 집단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데는 총선 표를 의식한 정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세월호 정국에서 김영란법에 반대하면 반개혁적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당시 김영란법의 위헌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반대 견해를 밝혔던 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영란법에 반대하면 지역구에서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협박 전화가 사무실로 수차례 걸려왔다”고 말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위헌 소지가 다분한 김영란법이 내년 9월 그대로 시행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 전에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청와대의 한 참모도 “김영란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우리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며 “재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정기국회에서 미비점을 보완하겠다던 여야 지도부의 공언과 달리 일부 의원의 산발적인 개정안 발의 움직임만 나타나고 있다.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은 김영란법이 규정한 수수금지 대상에서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을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고, 이상민 새정치연합 의원은 적용대상을 국회의원이나 행정부 고위공직자, 사법부 판·검사 같은 고위 공직자로 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법안 상임위인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법 시행 전 개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설문에서 법 적용대상 축소를 주장하는 이상민 의원의 주장에 대해 ‘고려해볼 만하다’(43.3%)와 ‘대상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50%)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 김영란법

직무와 상관없더라도 일정액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하면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2012년 8월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법안을 입법 예고해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정호/은정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