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중국 리스크'] 미국·중국·북한 '3중 악재'…시험대 오른 원화

입력 2015-08-24 17:46
4년 만에 원화가치 장중 1200원 깨져

원화가치 두달간 2.12% 추락
베트남·인도보다 하락폭 커
외환당국 개입 아직 소극적


[ 김유미 기자 ] 원화가치가 4년여 만에 장중 달러당 1200원대까지 하락했다. 북한의 도발과 중국 경기 부진, 미 금리인상 우려까지 3중 악재 속에 외환시장의 출렁임이 극심하다. 특히 원화의 추락세는 다른 통화와 비교해서도 가파른 것으로 나타나 시장의 긴장을 더하고 있다. ‘강한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을 자랑하던 원화의 위상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주말 악재의 위력

24일 서울외환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00원을 찍고 내려왔다. 장중 1200원 선에 진입한 것은 2011년 10월4일 이후 처음이다. 주말에 계속된 악재가 외환시장에 한꺼번에 반영된 것이다. 지난 20일 북한군의 포격 도발 이후 남북한 간 긴장이 확산됐다. 주말에 발표된 8월 중국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6년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면서 세계 증시가 급락했다.

이 때문에 다음달로 예상됐던 미국 금리인상이 12苾?미뤄질 것이란 전망이 늘었다. 이는 달러화 약세 요인이다. 하지만 신흥국 통화가치는 이보다 더 약세를 연출했다. 신흥국 자금이 대규모로 유출되면서 금융시장의 연쇄 불안 가능성이 제기됐다.

2013년엔 견고했는데…

최근 원화의 출렁임은 유독 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요 44개국 통화와 비교한 원화가치는 지난 6월30일 이후 평균 2.12%(21일 기준) 하락했다. 이 기간 원화보다 더 약세였던 통화는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등 8개국에 그쳤다. 같은 아시아 신흥국인 베트남(-2.65%) 인도(-2.27%) 인도네시아(-1.17%) 태국 (-0.63%)과 비교해서도 원화가치는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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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미국이 양적 완화 축소를 시사한 직후에도 신흥국 통화가치는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6개월간 원화가치는 달러 대비 1.3% 올라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대규모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안정적인 경제 여건 덕분에 ‘원화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분명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직후 원화 급락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시 원화가 준(準)안전자산에 가까워졌다는 낙관론도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악재로 원화의 실제 위상이 드러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악재의 차원이 달라 원화가 더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많다. 무역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대북 긴장감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의 고민

익명을 요구한 외환 전문가는 “이날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선을 찍자마자 내려온 것을 당국 개입의 흔적으로 볼 수도 있다”며 “하지만 환율 하락(원화 강세) 때보다는 개입이 소극적”이라고 주장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최근 환율 상승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올초까지 원화 강세로 수출이 타격을 받은 만큼 최근의 약세는 오히려 긍정적이란 속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고민은 적지 않다. 원화 약세가 심해지면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흔들린다.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도미노처럼 국내시장을 덮칠 수도 있다. 정 책임연구원은 “더 큰 우려는 중국 부진으로 기업 실적이 추락해 펀더멘털까지 악화할 경우”라며 “이 단계엔 원화 위상도 기존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