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자동차세 부과 기준 개편해야 하나

입력 2015-08-21 18:31
여론광장


[ 강현우 기자 ] 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내년 지방세제 개편안에는 자동차보유세(이하 자동차세) 관련 사항은 담겨 있지 않았다. 자동차업계 일각에선 현재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자동차세 부과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여서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요즘엔 과거와 달리 배기량과 차량 가격 간 비례 관계가 허물어지고 있어 차값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자동차세 부과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도 자동차세 부과기준을 배기량에서 차량 가격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행 배기량 기준 과세는 배기량은 적지만 값은 비싼 고가차량에 대해 혜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조세 형평성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환경오염 문제는 유류세나 연비 규제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처럼 보유 차량 가액을 기준으로 체계를 바꾸는 것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하능식 한국지방세연구원 세제연구실장은 “배기량이 같아도 값이 싼 차는 연비가 낮고 환경오염 물질을 더 많이 배출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차량에 더 낮은 세금을 부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완벽한 기준은 불가능하며 배기량을 기준으로 삼고 연비,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보완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찬성 / 배기량 기준 과세는 비싼 차만 혜택, 조세 형평성 위배…차값 중심 개편을

환경오염 문제는 연비 규제·유류세로 해결 가능

한국이 배기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 제도를 도입한 지 48년이 지났다. 배기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한 것은 과거에는 바람직한 제도였다. 하지만 자동차 기술이 진보하고 시장이 변한 요즘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예전엔 배기량과 차량 가격이 비례했지만 요즘 들어선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차와 3500만원짜리 차의 배기량이 같다는 이유로 같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파트 면적이 똑같이 85㎡라고 해도 가격이 2억원인 집과 6억원인 집의 세금이 달라지듯이 자동차세도 가격 기준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동차 관련 세금은 크게 구매 단계의 소비세, 등록 과정에서 내는 취득세, 보유에 따라 매기는 자동차세, 사용량을 반영하는 유류세(유류부가세·교육세 포함)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소비세·취득세는 재산세, 유류세는 자동차 운행에 따른 환경 오염과 교통난 등을 반영한 사회 부담금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자동차세는 어떤 성격이 강하다고 할 것인가. 소비세·취득세가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반면 자동차세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다. 배기량을 기준으로 삼는 자동차세는 재산세 성격과 자동차 운행에 따른 사회부담금의 성격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배기량 범위를 기준으로 삼고 누진제를 채택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제는 재산세 성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걷힌 자동차 관련 세금은 총 37조원 정도다. 이 가운데 62%에 해당하는 23조원은 유류세였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유류세가 전체 자동차 관련 세금 가운데 운행량에 따른 사회부담금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세에 운행세 성격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적다는 얘기다.

반면 자동차세의 재산세적 성격은 현행 제도가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동차가 재산목록 1위이거나 집에 이어 재산목록 2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자동차가 상당한 재산이라는 게 분명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현행 세제에선 재산세 성격이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에 역차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2000㏄급 중형차라 해도 국산차와 고가 수입차는 가격 차이가 2~3배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배기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매기다 보니 연간 세금은 40만원대로 비슷하다.

미국은 50개 주(州) 가운데 29개 주가 미국 자동차딜러연합(NADA)이 매년 발간하는 산정 기준에 따라 자동차 가액의 0.5~5%씩 자동차세를 매긴다. 나머지 21개 주는 자동차세가 없다. 유럽연합(EU) 28개국 가운데 배기량만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물리는 국가는 벨기에,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몰타 등 4개국밖에 없다. 독일과 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출력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도 이제 자동차세 제도를 현실에 맞게 바꿀 때가 됐다. EU 일부 국가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기준으로 검토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관련 기술이 앞선 유럽 자동차에 혜택을 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재산세로서의 조세 형평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미국처럼 차량 가액 기준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주요 차 수출 시장이란 점에서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반대 / 배기량 같아도 저가차량이 연비 낮아…오염물질 배출 많은 값싼 차 稅경감 안돼

배기량 기준 삼고 연비·CO₂배출량 등 보완 바람직

최근 자동차세의 배기량 기준 부과체계와 관련한 형평성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핵심은 현행 기준에 의하면 국산 승용차보다 두세 배 비싼 수입승용차가 같은 배기량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수준의 자동차세를 부담하게 되는데, 이것은 납세자 간 과세 형평성을 저해하므로 부과기준을 자동차 가격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동차세를 단순히 재산세로 간주하고 자동차의 재산가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물론 자동차세는 재산과세적 성격을 일부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는 주택 토지 건물 등 일반적인 재산세 과세대상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다. 즉 자동차는 운행과정에서 유류를 소비하고, 온실가스 및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해 환경을 오염시키며, 도로를 이용함으로써 도로의 마모·손상을 야기하는 한편 교통 혼잡으로 인한 운행시간 지연 등 매우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런 특성을 감안해 자동차의 취득 보유 및 운행단계마다 여러 가지 목적과 기능을 부여해 다양한 조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보유단계의 세제인 자동차세는 특히 요구되는 역할과 기능이 많은 정책세제다. 차량이 무거워 도로파손 및 마모를 많이 할수록, 이산화탄소 등 환경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할수록,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거나 대형 고가 차량일수록 많은 세금을 부담토록 해 사회적 외부비용을 내부화하고자 하는 정책목적을 지닌다. 그러나 이런 자동차세에 요구되는 모든 기능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부과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배기량이 많을수록 비싼 차량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동차의 기술발달로 배기량에 비해 엔진 성능이 우수하고 비싼 차량의 생산이 증가했다. 동일한 배기량 차량이더라도 고가 차량에는 높은 세금을, 저가 차량에는 낮은 세금을 부과해 형평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같은 배기량인 경우에 저가차량은 고가차량에 비해 저기술·저성능의 차량이어서 연비가 낮아 에너지 낭비적이고, 친환경기술이 적게 적용돼 환경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저가 차량에 대해 세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정책이 과연 자동차세의 역할과 기능정립 측면에서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자동차세를 가격 기준으로 전환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첫째 가격기준 자동차세는 보유세가 지녀야 할 환경규제적 기능 및 도로사용 부담금적 기능 수행 측면에서 역행하는 과세방식이다. 둘째 고급 친환경 자동차에 대해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과중한 세부담을 지우는 것은 자동차 기술발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수입 차량을 겨냥해 가격기준으로 과세할 경우 국제적 통상마찰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자동차세를 가격기준으로 전환한 경우는 국제적 사례를 찾기 힘들다. 다섯째 자동차세의 가격기준 과세는 중고자동차에 대한 가격책정 어려움으로 인해 형평성 논란을 야기하고 세무행정 비용을 증대시킬 수 있다.

배기량 기준 과세논란을 잠재우고 이를 대체할 완벽한 기준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자동차의 기술발달 등 환경변화를 감안해 배기량 기준에 연비,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량, 엔진출력 등의 기준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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