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최양희 장관 "창조경제, 초기엔 논란 있었지만 일자리 창출 해결사 될 겁니다"

입력 2015-08-20 19:13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익명의 은인이 보내준 별자리 책, 어린 시절 과학 호기심 키워줘"


[ 김태훈 / 박근태 기자 ] ‘키다리 아저씨’의 선물
과학책·고급 학용품 담긴 소포
중학생 될 때까지 집으로 배달
“과학자의 길 걷게 된 계기됐죠”

탄력 받은 창조경제
전국 각지에 설치한 혁신센터
대기업 1:1 매칭으로 성과 나타나
정권 바뀌어도 정책 지속돼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60·사진)은 1호 타이틀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일 때 국제표준화 조직의 첫 센터장을 맡았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표준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귀국하자마자 정보통신표준연구센터 설립을 주도하고 조직을 이끌었다. 서울대 교수로 근무할 때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2013년에는 삼성전자가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세운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투자 방향의 밑그림을 그렸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기초과학, 융합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작년 7월 미래부 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정책을 이끄는 최 장관을 서울 양재동의 동해안 해산물 음식점 어진에서 만났다. 어진은 잘 꾸민 도심 식당과는 다르다.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서울에서 드물게 연중 도루묵 양미리 같은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최 장관은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가져온 해초를 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었는데 이곳 반찬이 그런 느낌”이라며 “집도 가깝고 고향처럼 편해 가끔 친지와 함께 와 소주 한잔 한다”고 말했다.

동갑내기보다 3년 빨리 초등학교 졸업

최 장관이 즐겨 먹는 메뉴는 도루묵이다. 도루묵구이·조림 등을 주문하고 반주로 소주를 청했다. 주량을 묻자 “보통”이라고만 했다. 소주 한 병 정도냐고 다시 물으니 도루묵으로 화제를 돌렸다. 비린내가 없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열량이 낮은 건강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철에는 포구에서 1만원만 내면 도루묵 70여마리를 준다”며 “구이도 먹고 알을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최 장관의 고향은 강원 강릉이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강릉 일대에선 이름난 수재였다. 조기입학, 월반(越班) 등을 거쳐 초등학교를 2년 일찍 졸업했다. 그는 “일곱 살 때 우연히 아버지와 함께 집 근처 초등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똑똑하게 생겼다며 ‘노래 불러봐라’, ‘칠판에 글을 써봐라’ 한 뒤 학교에 들어오라고 했다”며 “입학 ?한 달쯤 지나 담임선생님이 저쪽 반으로 가라고 했는데 그게 2학년 반이었다”고 설명했다.

동갑내기들에 비하면 3년 일찍 졸업했다. 아버지가 호적을 한 살 많게 올려서다. 세 살 위 누나와 같은 학년에서 공부하게 된 까닭이다. 형 누나뻘과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성이 탁월했던 데다 세상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던 덕분이다.

서울에 올라온 건 경기고에 진학하면서다. 먼저 서울로 올라온 형과 함께 자취도 하고 하숙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최 장관은 “태백산맥을 넘어 서울로 오려면 몇 번 토하고 그래야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학생들에 책 보내주기 활동

최 장관과 고향이 같은 어진의 사장은 귀한 손님이 왔다며 문어회, 새치구이, 닭새우구이, 감자전 등 동해 음식들을 계속 내왔다. 최 장관은 “예전에 동해에선 명태가 천지였고 도루묵 임연수어도 많이 잡혔는데 모두 값싼 생선”이라며 “도미 조기 같은 비싼 생선은 서울 와서 처음 먹어봤다”고 했다.

최 장관은 중학교 때까지 시를 썼다. 공부만 잘한 게 아니라 강원 일대 백일장에 나가 상도 여러 번 탔다고 했다. 시인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고에 진학한 뒤 문예반에 들어가 처음으로 나간 서울시 백일장. 시제는 ‘인왕산’이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산이었지만 두 시간가량 끙끙거리며 글을 썼다. 장원(壯元)은 같은 문예반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는 “彭났?장원의 글은 범접할 필력이 아니었다”며 “당시 수상자들은 대부분 문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은 선택의 문제란 걸 그때 깨달은 것 같다”며 “시는 내 장르가 아니라고 판단해 그만두고 키 좀 커보겠다는 생각에 농구반으로 옮겼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최 장관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한국과학원(현 KAIST) 석사를 마친 뒤 프랑스 국립정보통신대(ENS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공계를 택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집에 소포가 왔다. 보낸 사람 이름은 없고 수신자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뜯어 보니 별자리 등을 안내하는 여섯 권의 과학전집과 고급 학용품이었다. 당시 시골에선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소포는 1년에 몇 차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이어졌다. 최 장관은 “당시 공부 잘한다고 동네 신문에 나기도 했는데 이걸 보고 ‘키다리아저씨’ 같은 독지가가 책을 보낸 것 같다”며 “호기심 많은 나이에 자연스럽게 과학을 좋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최 장관이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어린 학생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어릴 적 키다리아저씨의 도움을 잊지 못해서다. 그는 “나도 경험했지만 어린 시절 좋은 책을 접하고 독서를 지도해주는 멘토를 만나는 것은 인생을 의미있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창조경제는 일자리 해법…‘대(大)나사’라도 박아야

최 장관은 지난달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그간 어릴 때부터 ‘컴퓨팅 사고’를 가르치자는 ‘소프트웨어 중英?rsquo;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교육과정 개편을 이끌어냈다. 작년 10월 도입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에 대해서는 휴대폰 구입 때 보조금 차별을 줄이는 효과를 냈지만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시장을 위축시켰다는 지적도 함께 받고 있다.

요즘 가장 주력하는 업무는 창조경제가 성과를 내도록 하는 일이다. 전국 17곳에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기업가치 1조원 기업, 글로벌 혁신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취임 초 창조경제에 대해 외부의 냉소적 시각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미래부도 처음 추진하다 보니 우왕좌왕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대기업과 1 대 1 매칭 방식으로 혁신센터를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성과가 나타났다”며 “참여 기업들도 이젠 뭔가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최 장관은 창조경제가 효과를 내면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산업이 고도화되면 일자리가 줄 수밖에 없는 만큼 새로운 사업에서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벤처 창업으로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기업, 중소기업의 역할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국 각지에 혁신센터를 설치했으니 정권이 바뀌어도 창조경제란 ‘대(大)못’을 쉽게 빼지 못할 것 같다고 하자 “대못보다는 ‘대(大)나사’를 박아야 빼기 어려울 것”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창조경제의 효과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학, ICT 국제 위상 높여야 할 때

술이 몇 잔 돌고 이야기가 무르익자 최 장관은 “이 집이 물회가 좋다”며 오징어 물회를 주문했다. 그는 “포항은 가자미, 제주도는 자리물회라면 강릉은 오징어물회”라며 “요즘은 동해에서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아 금값이 됐다”고 했다. 지난 1년 가장 뿌듯했던 순간으로는 작년 10월 부산에서 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를 꼽았다. 그는 “행사 기간에 세계 각국 장관급 인사들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이 쇄도했다”며 “ICT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요즘 공을 들이는 분야도 과학기술, ICT의 글로벌 진출이다. 개발도상국 등에 한국식 성장모델을 전수하며 국제 위상을 높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오는 10월 대전에서 열리는 세계과학정상회의도 한국의 역량을 알릴 좋은 기회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담당 장·차관 60여명과 과학기술 분야 석학 등 2000여명이 참가한다. 최 장관은 “노벨상 얘기를 많이 하지만 실력이 있는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며 “외교 하면 정치, 경제만 얘기하는데 과학, 문화 분야 외교에서도 찾아와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이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CJ의 ‘KCON 2015’ 행사를 참관하기도 했다. K팝, 패션, 뷰티, 게임, 음식 등에 열광하는 현지인을 보며 한류의 저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문화예술 분야에 창의적인 사람이 많은데 여기에 기술을 잘 결합해 비즈니스로 만들면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문화와 ICT 융합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최양희 장관의 단골집 어진
동해서 잡은 도루묵·양미리, 4계절 내내 맛볼 수 있어

강원 강릉 출신인 조영정 사장이 2007년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맞은편에서 문을 연 동해안 해산물 음식점이다.

상호는 착하고 어질게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어진으로 지었다. 도루묵, 오징어 물회, 곰치국, 오징어 통찜 등 동해안에서 제철에 잡은 생선을 맛볼 수 있다. 도루묵은 추석부터 설까지가 제철이다. 어진에서는 도루묵 양미리 등을 연중 즐길 수 있다.

강원 출신 단골손님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충분한 양을 확보해놓고 있다는 게 조 사장의 설명이다. 봄에는 멸치, 여름에는 물회, 가을에는 전어회, 겨울에는 도치숙회 등 계절별미도 맛볼 수 있다. 도루묵찜(大) 4만원, 도루묵구이 3만원, 닭새우구이 1만5000원, 물회 1만5000원, 곰치국 1만3000원. (02)2058-2933

■ 최 장관의 ‘강추도서’는?
실화에세이 ‘와일드’·3D프린터조명 ‘메이커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와일드’를 꼽았다. 여성 작가가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로키산맥 4285㎞를 종주하며 느끼고 깨달은 것을 소개한 실화 에세이다. 3차원(3D) 프린터 보급으로 누구나 제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조명한 ‘메이커스’도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했다.

■ 최양희 장관

△1955년 강원 강릉 출생 △197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7년 한국과학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석사 △1977~79년 한국통신기술연구소 전임연구원 △1984년 프랑스 국립정보통신대(ENST) 전산학 박사 △1984~9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정보통신표준연구센터장 △1991년~ 서울대 공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2008년 한국정보과학회 회장 △2009~11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대원장 △2013~14년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초대이사장 △2014년 7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김태훈/박근태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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