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익명의 은인이 보내준 별자리 책, 어린 시절 과학 호기심 키워줘"
[ 김태훈 / 박근태 기자 ]
‘키다리 아저씨’의 선물
과학책·고급 학용품 담긴 소포
중학생 될 때까지 집으로 배달
“과학자의 길 걷게 된 계기됐죠”
탄력 받은 창조경제
전국 각지에 설치한 혁신센터
대기업 1:1 매칭으로 성과 나타나
정권 바뀌어도 정책 지속돼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60·사진)은 1호 타이틀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일 때 국제표준화 조직의 첫 센터장을 맡았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표준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귀국하자마자 정보통신표준연구센터 설립을 주도하고 조직을 이끌었다. 서울대 교수로 근무할 때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2013년에는 삼성전자가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세운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투자 방향의 밑그림을 그렸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기초과학, 융합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작년 7월 미래부 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정책을 이끄는 최 장관을 서울 양재동의 동해안 해산물 음식점 어진에서 만났다. 어진은 잘 꾸민 도심 식당과는 다르다.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서울에서 드물게 연중 도루묵 양미리 같은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최 장관은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가져온 해초를 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었는데 이곳 반찬이 그런 느낌”이라며 “집도 가깝고 고향처럼 편해 가끔 친지와 함께 와 소주 한잔 한다”고 말했다.
동갑내기보다 3년 빨리 초등학교 졸업
최 장관이 즐겨 먹는 메뉴는 도루묵이다. 도루묵구이·조림 등을 주문하고 반주로 소주를 청했다. 주량을 묻자 “보통”이라고만 했다. 소주 한 병 정도냐고 다시 물으니 도루묵으로 화제를 돌렸다. 비린내가 없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열량이 낮은 건강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철에는 포구에서 1만원만 내면 도루묵 70여마리를 준다”며 “구이도 먹고 알을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최 장관의 고향은 강원 강릉이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강릉 일대에선 이름난 수재였다. 조기입학, 월반(越班) 등을 거쳐 초등학교를 2년 일찍 졸업했다. 그는 “일곱 살 때 우연히 아버지와 함께 집 근처 초등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똑똑하게 생겼다며 ‘노래 불러봐라’, ‘칠판에 글을 써봐라’ 한 뒤 학교에 들어오라고 했다”며 “입학 ?한 달쯤 지나 담임선생님이 저쪽 반으로 가라고 했는데 그게 2학년 반이었다”고 설명했다.
동갑내기들에 비하면 3년 일찍 졸업했다. 아버지가 호적을 한 살 많게 올려서다. 세 살 위 누나와 같은 학년에서 공부하게 된 까닭이다. 형 누나뻘과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성이 탁월했던 데다 세상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던 덕분이다.
서울에 올라온 건 경기고에 진학하면서다. 먼저 서울로 올라온 형과 함께 자취도 하고 하숙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최 장관은 “태백산맥을 넘어 서울로 오려면 몇 번 토하고 그래야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학생들에 책 보내주기 활동
최 장관과 고향이 같은 어진의 사장은 귀한 손님이 왔다며 문어회, 새치구이, 닭새우구이, 감자전 등 동해 음식들을 계속 내왔다. 최 장관은 “예전에 동해에선 명태가 천지였고 도루묵 임연수어도 많이 잡혔는데 모두 값싼 생선”이라며 “도미 조기 같은 비싼 생선은 서울 와서 처음 먹어봤다”고 했다.
최 장관은 중학교 때까지 시를 썼다. 공부만 잘한 게 아니라 강원 일대 백일장에 나가 상도 여러 번 탔다고 했다. 시인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고에 진학한 뒤 문예반에 들어가 처음으로 나간 서울시 백일장. 시제는 ‘인왕산’이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산이었지만 두 시간가량 끙끙거리며 글을 썼다. 장원(壯元)은 같은 문예반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