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을 '과잉 무상복지'에 중독시킨 정부

입력 2015-08-18 19:23
서귀포·가평·김천 '무상보육 축소' 실험

"양육수당 더 줘도 집에서 키우기 싫다"
전업주부까지 어린이집 종일반에 몰려

무상보육예산, 4년새 두배…10조4000억


[ 고은이 기자 ] 정부가 엄마의 취업 여부에 따라 아이 보육료를 차등 지급하는 보육체계 개편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범사업 중간조사 결과 맞벌이와 외벌이 상관없이 대부분 부모가 기존 종일제 보육(12시간)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확대한 무상복지를 다시 줄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제주 서귀포시, 경기 가평군, 경북 김천시 등 세 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난 7월 시행한 맞춤형 보육 시범사업의 ‘종일형’(12시간) 신청률은 96%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4%만이 ‘맞춤형’(반일형·6~8시간)을 신청했다. 전업주부를 포함한 대다수 부모가 아이를 하루 12시간까지 어린이집에 맡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다.

전업주부 등 12시간 보육이 필요 없는 부모가 30~40%가량일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다른 결과다.

복지부 관계자는 “예상보다 많은 학부모가 종일형을 선택하는 바람에 이들이 제출한 취업증명서 등을 검토해 종일형이 필요 없는 사람을 걸러내는 중”이라며 “이미 12시간씩 아이를 맡기는 데 익숙해진 부모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시범사업은 전업주부 등 종일제 보육이 필요 없는 부모에게 지원하는 보육료를 효율화하기 위해 시작했다. 지금은 0~5세 영·유아가 있는 가정은 취업주부든 전업주부든 똑같은 시설보육료(12시간 기준 72만원)를 지원받는다.

이런 보편적 무상보육으로 관련 예산은 2011년 5조1000억원에서 올해 10조4000억원으로 두 배 넘게 불었다. 정부 관계자는 “전업주부에게는 6~8시간을 지원하고, 맞벌이 가구엔 12시간을 지원하면 관련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벌이, 맞벌이 상관없이 12시간 보육료를 모두 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제주 서귀포에서는 전체 대상 아동 2700여명 중 95%(2550명)에 달하는 아동의 부모가 취업이나 다자녀, 한부모, 임신 등으로 6~8시간이 아닌 12시간 보육이 필요하다는 증명서를 제출했다. 가평군에서도 전체 대상자 600여명 중 반일형 보육 신청자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반일형을 선택하면 매달 양육보조금 5만원(김천·가평)이나 일시 보육 바우처 10시간권(4만원 상당·서귀포)을 주지만 반일형 전환을 유도하기엔 턱없이 적다는 반응이다.

이번 시범사업에서 보건복지부는 또 가정에서 양육했을 때 주는 양육수당을 한 달에 5만~10만원가량 늘렸다. 시설보육으로 받는 보육료(매월 72만원)에 비해 가정 양육수당(20만원)이 터무니없이 적어 과도한 시설보육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양육수당을 더 받기 위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던 아이를 집에서 키우겠다는 학부모의 신청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14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숙영 씨(30)는 “겨우 5만원 더 받자고 아이를 내내 집에서 키운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무상복지의 역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무상보육을 추진했다.

제대로 된 검토 없이 0~5세 전면 무상보육이 시작됐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말기 복지부가 다시 전업주부 대상 지원액을 반일제 기준으로 깎는 보육체계 개편안을 내놨지만 대선을 앞둔 국회가 반대했다.

한 보육정책 전문가는 “무상보육으로 이미 학부모들이 12시간 보육 패턴에 익숙해져버린 상황”이라며 “한번 늘린 복지는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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