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쇄·유통 집적화해 시너지 성공
영화 등 영상 관련 112개 조합사 모집해 2단계 사업 박차
[ 안재광 기자 ]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1988년 여름. 이기웅 열화당 대표, 윤형두 범우사 회장, 박맹호 민음사 회장 등 8명의 출판인이 북한산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출판업계의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는 출판업계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1981년 소설 ‘인간시장’이 판매량 100만부를 넘어 처음 밀리언셀러에 오른 뒤 시, 수필, 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왔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출판 등록이 자유화됐고 가로쓰기와 한글표기가 정착되는 등 출판업계의 큰 변화가 이런 성장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유통, 물류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았다. 이날 모인 출판인들은 뜻을 하나로 모았다. ‘고민해야 할 게 있다면 한곳에서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출판사들을 한 공간에 모아 놓으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파주출판도시)의 ‘밑그림’이 그려진 순간이다.
○‘위대한 계약서’로 전체 조형미 살려
출판업계는 파주출판도시 설립 이전에도 출판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동 물류와 판매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파주출판도시를 통해 출판업의 모든 과정을 한곳에서 할 수 있게 됐다. 이곳에선 출판사가 책을 기획하고 편집해 제작사가 이를 책으로 출간한다. 출판물 종합유통센터에서 전국으로 책이 배달된다.
파주출판도시는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사업협동조합’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기 파주 교하읍 일대 156㎡ 부지에 편집·인쇄·물류 등 출판에 관한 모든 인프라가 갖춰졌다. 117개 출판사와 39개 인쇄사, 그리고 지류 유통과 제본 등 200여개 출판 관련 기업이 입주했다. 임대 입주사까지 포함하면 600여개사에 이른다.
파주출판도시는 단순히 출판 관련 기업이 한곳에 모인 집적단지가 아니다. 사람과 자연, 문화와 산업이 어우러진 책의 도시를 콘셉트로 세워졌다. 출판·인쇄·유통 등 출판산업을 집적화해 경제적 시너지를 내는 한편 한강과 심학산, 출판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공간도 만들어냈다.
파주출판도시의 성격은 조합과 입주사들이 합의한 ‘위대한 계약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2000년 파주출판도시 건축주와 건축가들은 ‘사옥 건축은 회사별로 하지만 전체의 조형미를 고려해 공동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다양함을 추구하면서 건물의 재질, 형태, 높이, 색 등에 대해 공동의 기준에 따르기로 했다. 또 다리, 가로등, 가로수 등 부대시설도 생태환경 도시라는 철학에 부합하게 했다. ‘출판도시 입주사와 건축가들은 건강한 출판문화와 건축문화를 세워 출판도시의 성공적인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다짐도 했다.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사업협동조합 명예이사장은 “파주출판도시를 조성하면서 가장 가치를 둔 것이 공동성의 실현이었다”며 “자기 탐욕을 억제하고 공동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협동조합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이익보다는 공동의 가치를 앞세워야 성공한다”고 덧붙였다.
○출판도시→문화도시로
파주출판도시는 2007년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준공으로 1단계 사업이 완료됐다. 연간 1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1만여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이런 성과 덕분에 아랍에미리트(UAE)가 국부인 셰이크 자이예드를 기려 제정한 ‘셰이크 자이예드 도서상’을 2012년 받기도 했다.
파주출판도시는 현재 2단계 협동화 사업을 하고 있다. ‘책과 영화의 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112개 조합사를 모집해 내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출판’이 테마였다면 2단계 사업에선 ‘문화’로 확장했다. 영상 및 소프트웨어산업과 출판의 융합을 이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최근 출판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협동조합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사업협동조합 전체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필요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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