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으로 20여개 기업 소유한 김영준...주가조작·횡령·로비 의혹 전방위 수사
검찰 수사에 한달째 종적 감춘 '기업 사냥꾼'
이화전기 등서 부당이득 혐의
검찰 "시세조종·횡령 일삼아"
과거 '이용호 게이트' 배후 지목돼
정·관계 등 로비 가능성도 거론
[ 오형주/정소람 기자 ] ▶마켓인사이트 8월17일 오후 4시52분
2000년대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로 지목돼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김영준 전 대양상호신용금고 회장(55)이 주가조작 등 혐의로 또다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잠적했다.
업계에서 ‘기업사냥꾼’으로 통하는 김 전 회장은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만 수십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이진동)는 전력기기 제조회사 이화전기공업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을 회삿돈 수십억원을 빼돌리고 계열사 주가를 띄운 혐의(횡령 시세조종 등)로 한 달째 쫓고 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사주를 받아 이화전기 및 계열사 주가를 고의로 부양한 혐의(시세조종)로 노모씨와 홍모씨 등 시세조종 전문가 두 명을 붙잡아 지난달 구속기소했다. 김 전 회장과 또 다른 시세조종 전문가 한 명은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도주해 종적을 감췄다.
검찰이 김영준 전 대양상호신용금고 회장(55·사진)을 상대로 수사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증권선물위원회가 이화전기공업과 김 전 회장 등을 사기적 부정거래 등 혐의로 고발하면서부터다.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이화전기는 2013년 해외관계사의 파산신청 등 사실을 증권신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유상증자를 실시해 김 전 회장 등이 96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이진동)는 4월 이화전기 본사와 대표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횡령 및 주가조작 등 김 전 회장과 관련한 상당수 혐의를 추가로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김 전 회장이 이트론, 이아이디 등을 포함해 문어발식으로 여러 상장사를 인수합병(M&A)한 뒤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시세조종을 통해 주가를 부양해 사적 이익을 챙기고 횡령을 일삼았다”며 “계열사를 사실상 사금고화한 것”이라고 전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있는 이화전기는 대북 송전사업과 관련해 대표적인 ‘대북 테마주’로 꼽힌다. 지난해 1074억원의 매출(연결 기준)을 올린 이 회사의 경영은 김 전 회장의 친동생인 김영선 대표가 맡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공식적 직함이 없는 김 전 회장이 차명 주식 보유를 통해 이화전기 및 계열사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세조종 전문가인 노모씨도 공식적 직함은 없지만 김 전 회장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어 이화전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김 전 회장의 행적이 드러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과거 이용호 게이트 당시 진흥기업과 대양상호신용금고의 실소유주로 알려졌던 김 전 회장은 2005년 2년 6개월간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뒤 모든 자산을 차명으로 돌리고 경영 일선에서 자취를 감췄다.
은행원 출신으로 서울 명동에서 사채업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은 중소기업 M&A 시장의 ‘큰손’으로 통한다. 그가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는 기업만 20여개가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차명으로 보유한 재산도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이화전기의 계열사 3~4군데뿐만 아니라 미국계 자원개발회사인 K사와 바이오업체 N사 등 여러 기업의 주가 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추가 조사를 벌인 뒤 구속 기소할 계획이다.
한편 김 전 회장이 과거에도 도주 행각을 벌였다는 점에서 이번엔 검찰의 추적을 얼마나 따돌릴 수 있을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김 전 회장은 대검찰청이 이용호 게이트 수사에 나선 2001년 9월 잠적했다가 4개월 만인 2002년 1월 차정일 특별검사팀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이 전 회장이 벌인 정·관계 로비의 배후로도 지목됐다. 체포 당시 김 전 회장은 서울 청담동의 고급 빌라에 머물며 강남 일대 유흥가에서 재벌 행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이 이용호 게이트 당시 금융당국과 정·관계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정황 등을 감안하면 이번 수사가 또 다른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까지 특별히 로비와 관련한 증거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오형주/정소람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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