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한국 경제 이끈 기업·기업인] '파독(派獨) 광부' 차관 밑천으로 공장 세워… 반도체·선박 1조 달러 수출

입력 2015-08-13 07:01
산업정책 어떻게 바뀌었나

베트남전 파병 계기 첫 물자 수출
1974년 무역 100억달러 기록

1980년대 중동 건설붐에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 호황 누려

반도체·컴퓨터·자동차·선박·석유제품
1990년대 수출 5대 품목으로


[ 김유미/심성미 기자 ]
1945년 해방도, 1950년 6·25전쟁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제조업 기반은 무너졌고 한국 경제의 맥박은 해외 원조로 유지되고 있었다. 1954~1961년 연평균 4.5%의 성장률을 올렸지만 우리 힘이 아니라 외채에 의한 것이었다.

구호물자를 가공한 제분, 제당, 면직 등 ‘삼백산업(三白産業)’이 그나마 이 시기를 떠받쳤다. 산업구조는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1953년 산업생산의 48.2%는 농림어업이 차지했고 서비스업은 40.3%, 제조업은 7.8%에 불과했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암흑 속에 있던 한국 경제의 역사는 1962년에야 시작됐다.

1962~1974년 농경에서 공업으로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계기로 산업구조는 변화를 맞았다. 이때까지 최대 수출품목은 쌀과 어류, 비철광석 등이었다. 점차 노동집약적인 의류, 직물, 신발 등을 생산하고 수출하기 시작했다. 저렴한 임금이 무기였다.

1960년대 중반~1970년대 초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한 대가로 들여온 차관은 경제 개발의 밑천이 됐다. 비슷한 시기 베트남전쟁 파병을 계기로 첫 물자 수출에 나섰다. 1970년대엔 공업화 기반이 서서히 만들어졌다. 1972년 울산 석유화학단지, 1973년 포항제철소가 세워졌다. 전기기기, 철강판이 수출 품목에 올랐다. 아직 제품 경쟁력은 낮았고 값싼 가격이 강점이었다. 1974년 무역 100억달러 기록은 작지만 소중한 성과였다.

1975~1988년 제조업에 날개 달다

1970년대 중반은 섬유산업 수출의 절정기였다. 1975년 최대 수출품목은 의류(22.3%) 어류(6.3%) 인조섬유직물(5.4%) 등이었다. 하지만 섬유산업의 수출 비중은 1980년대로 오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경공업의 자리를 선박, 영상기기, 자동차, 반도체 등 장치산업이 점차 대체하면서다.

1980년대 제조업은 노동 대신 자본의 힘으로 재편됐다.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대규모 시설투자를 이어가면서 수출시장도 다변화했다. 중동지역의 건설붐도 훈풍이 됐다.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1986년 처음으로 흑자(31억달러)로 전환했다.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에 힘입은 ‘3?호황’이었다. 1988년 무역 10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1989~2000년 수출산업 고도화

1990년대엔 의류 등 기존 수출 품목이 쇠퇴하고 반도체, 컴퓨터, 자동차, 선박, 석유제품이 수출 5대 품목을 장식했다. 이때부턴 핵심 부품을 국산화한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라디오나 TV 등 기존 완성제품 외에 반도체 등 중간재 부품을 활발하게 내놓았다.

1990년대 초엔 독일이 통일되고 옛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권 국가와의 교류도 시작됐다. 특히 19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은 뒤엔 대(對)중 수출이 급증했다. 중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중간재를 주로 수출하는 형태였다.

1996년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며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였다. 하지만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외형 성장에 치중했던 한국 경제의 전략을 돌아보는 시기였다. 기업들은 제품경쟁력 강화를 통해 내실을 다졌다. 2000년 무역 규모는 3000억달러를 돌파한다.

2001~2011년 세계 일류를 꿈꾸다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반도체가 수출 1위로 등극했다. 휴대폰이 주요 수출품으로 부상한 것도 이때였다. 외환위기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기업들은 반도체, 선박 등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도 보탬이 됐다. 2001~2005년 대중 수출은 전체의 18.1%로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떠올랐다. 2000년 무역 3000억달러에서 2005년 5000억달러를 달성하기까지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지만 稚?제조업엔 기회였다. 원화 약세와 제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위기를 극복해냈다.그리고 마침내 2011년 무역 1조달러라는 기록을 세운다.

2012년~ 새 도전으로

세계는 더 가까워졌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올해는 한·중 FTA 발효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은 452만대로 세계 5위에 올랐다. 1955년 최초로 7대를 생산한 뒤 비약적인 성과였다. 1955년 2000GT에 불과했던 선박 건조량은 2013년 기준 1004만CGT(약 2123만GT)로 세계 2위다.

1953년 10% 아래였던 제조업 비중은 지난해 30.3%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부활과 중국의 추격 속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과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은 지난해 한국 경제의 59.4%까지 성장했지만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다. 내실을 다지는 것은 해방 70년을 맞은 한국 경제의 도전 과제다.

김유미/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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