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법원, 배우자 배려하지 않은 아내에 이혼 책임 판결
장인·장모에 경제적 의존, '상처 줬을 땐 양육권 포기' 등
아내, 굴욕적인 각서 요구
"부모에 기댄 캥거루족 증가…부부 갈등 원인 되기도"
[ 김인선 기자 ]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여보, 이게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아. 함께 살아온 지난 9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
우리 2006년 처음 만났지.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기억나? 우리 그날 크게 다퉜잖아. 누나들이 당신에게 “민섭이가 아직 대학원생인데, 결혼하면 네가 먹여살릴 수 있느냐”고 다그쳤고, 당신은 그때 크게 상처받았잖아. 그날 이후 당신은 우리 어머니 칠순잔치 때 빼고 시댁에 발길을 끊어 버렸지. 당신 마음 이해는 해. 그렇지만 잔치 끝나자마자 장모님 계신 숙소로 가버린 것은 좀 섭섭하더라.
첫째 가영이 백일 무렵이었나? 어머니가 손주 보러 우리집에 오셨다 하루 묵고 가셨잖아. 당신은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장모님을 우리집에 모셔와 하루 주무시게 했지. 당신은 가영이가 아파서 장모님이 옆에 꼭 있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고, 나는 어머니도 계시는 데 장모님을 부를 이유는 없다며 서로 말다툼을 벌였어.
그래, 물론 나도 잘한 건 없지. 결혼하고 2년 동안은 내가 학생이라 생활비 한 번 갖다준 적이 없잖아. 그때 장인어른이 생활비를 주지 않으셨으면 우리 네 가족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을 거야. 장모님도 외손주들 맡아 키워주시느라 고생하신 것 알고 있어. 그런데 여보, 아무리 그래도 장인장모님이 시시콜콜 우리 부부 일에 간섭하신 건 너무하셨어.
나 당신한테 꼭 사과받고 싶은 게 있어. 당신이 나랑 싸울 때마다 쓰게 했던 각서 말이야. ‘앞으로 가영이 엄마 말씀에 절대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 가족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을 시에는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고 장인어른의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겠다’. 아무리 못난 남편이지만 살면서 한 번이라도 날 배우자로 인정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어. 나도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야. 각서 쓸 때마다 얼마나 모멸감이 들던지….
그래도 우리 잘살아보려고 노력했잖아. 부부십계명도 만들어보고 상담 클리닉도 나가보고 말야. 하지만 2년 전부터 싸움은 점점 더 잦아졌지. 우리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조하는 문제로 갈등이 생겼고 갈등은 칡뿌리처럼 엉켜 들어갔어. 처자식을 버리고 나가 이혼소송하는 남편이 무슨 할말이 있겠어.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법원의 판단은
대구가정법원 포항지원은 지난 2월 “파탄에 이른 원인은 혼인 후에도 육아 등을 이유로 부모와 지나치게 가깝게 생활하면서 원고(남편)가 피고(아내)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각서를 요구하는 등 원고를 배우자로서 배려하지 않은 피고에게 있다”며 “두 사람은 이혼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최근 들어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는데 이런 세태가 이혼 부부의 갈등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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