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임금피크제, 협상만 하고 있을 때 아니다

입력 2015-08-10 18:26
"저성장·고령화에 직면한 한국 경제
청년 고용절벽 해소할 유일한 대안
상호양보로 임금피크제 돌파구 찾아야"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개혁에 대한 대(對)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특히 노동개혁을 적시하며 전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연내 도입을 끝마치겠다고 했다.

노동분야 개혁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6월17일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안’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공공기관은 내년까지 마무리하고 민간기업에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대통령 담화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일정을 올 연말까지로 앞당긴 것이다.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발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2013년 4월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에서 의결되던 당시 갈등은 예고됐다. 2016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정년연장 사업장은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한다’는 불분명한 표현을 남겼을 뿐, 임금피크제를 명시하지 못한 채 법안만 통과시켰다. 당시에 논란이 되는 사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정년연장을 법제화한 뒤, 이제 와서 다시 임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는 격이니 노동계가 환영할 리 없다.

청년 취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장년층의 정년연장은 사실상 청년 실업을 가중시킨다. 특히 국내 대부분의 기업은 연공급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고령자의 정년연장은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청년의 신규 고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 근로자의 업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이에 비례해 임금을 삭감하고 신규고용을 늘려 일자리를 나누는 ‘워크셰어링(work sharing)’이 등장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사실상 임금삭감을 의미하므로 근로자들이 적극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화하는 저(低)성장 기조와 고령화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하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에 이른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늘어난 정년에 대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해 그 임금삭감분으로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다. 특히 일본은 한국처럼 연공서열제가 있는 나라이지만 이젠 임금피크제가 대표적 임금체계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임금피크제는 정년 후 같은 신분으로 일하되 임금을 삭감하는 근무연장제도(14%), 정년퇴직 후 다시 고용계약을 맺어 바뀐 사원신분과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는 재고용제도(45%)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임금피크제는 노사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동시에 유리한 제도로 인식됐다.

이처럼 임금피크제의 시대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지금처럼 정부 주도의 개혁안보다 노사 합의가 중요하며,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노사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개별 기업들의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사측과 노측에 최대한의 자율권을 줘야 하며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임금삭감분을 신규채용에 사용하게 하는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노·사·정은 임금피크제에 대한 소모적 논쟁보다는 지속적인 논의와 타협을 통해 보다 적합한 임금체계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거시경제 전망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노사가 단기적 시각에서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모두 손해다. 지난 5월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여파로 서비스업을 비롯한 내수가 크게 위축됐고, 향후 경기침체는 더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따라서 근로자, 기업, 정부 모두 한 발짝 물러서서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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