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입력 2015-08-09 20:36
'벌의 위기'가 보낸 생태계 경고

생존 위협받는 꿀벌
폭염·혹한 때 여왕벌 산란율 '뚝'…이상기후로 '아까시 꿀' 생산 줄어
바이러스·농약 치명타 개체수 급감

꿀벌 살리기 나선 각국들
인간이 먹는 작물 63% 수분 도와…"꿀벌 사라지면 4년내 인류도 멸망"
미국·EU 살충제 금지 등 보호책 내놔…국내 연구팀도 토종벌 복원 연구


[ 박근태 기자 ] 최근 들어 농촌뿐 아니라 도심 텃밭 등에서 꿀벌을 기르는 양봉(養蜂) 인구가 늘고 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4~5년 뒤면 짭짤한 소득을 얻을 수 있어 퇴직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유익한 꿀을 주고, 식물의 수분(受粉)을 돕는 꿀벌은 심각한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국내 꿀벌 대부분 서양에서 유래

한국에 사는 야생 벌은 꿀벌을 제외하고 1500여종에 이른다. 양봉용으로 도입한 서양 꿀벌은 많은 아종(亞種)이 있는데, 국내에는 유럽에서 유래한 이탈리안 종이 많이 살고 있다. 몸은 황색이고 번식력과 좁은 공간에서 함께 서식하는 능력이 뛰어나 많이 보급돼 있다. 꿀벌은 사회성이 강한 곤충으로 여왕벌 한 마리를 중심으로 적게는 수천마리에서 많게는 2만~3만마리가 모여 산다. 여왕벌은 4~9월 하루 2000~3000개 알을 낳는다. 꿀벌은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16~24일이면 성충이 된다. 요즘처럼 낮 최고온도가 32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여름은 꿀벌에게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여왕벌은 올해처럼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에는 알을 적게 낳는다. 여왕벌은 꿀벌 사회를 통솔하며 3~5년 살지만 일벌은 활동이 활발한 봄과 여름에는 30~40일, 겨울에는 6개월가량 사는 게 고작이다.

○먹이 줄고, 외래종 침입에 떠는 꿀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꿀벌이 살아가는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국내에 사는 꿀벌은 아까시나무에서 70% 가까이 꿀을 따오는데 최근 이상기온으로 아까시 꽃이 동시에 피면서 꿀을 채취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한 달가량 차이 나던 한반도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의 아까시나무 개화시기가 15일로 줄었다. 메밀과 참깨, 유채꽃의 재배 면적이 줄면서 꿀벌에게 꿀을 제공하던 다른 밀원(蜜源)도 줄고 있다.

외래 침입종인 등검은말벌도 국내에 서식하는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등검은말벌은 중국 남부와 베트남, 인도 등 동남아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길이 2~3㎝의 말벌이다. 2003년 부산 영도에서 처음 발견된 뒤 토종벌과 양봉 꿀벌을 사냥하는 공포의 포식자로 떠올랐다.

○세계 꿀벌들 바이러스로 치명타

서양 꿀벌이 한국의 산과 숲을 누비는 동안 최근 수년 새 한국 토종 꿀벌은 개체 수가 95% 이상 줄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미국에 사는 꿀벌 42.6%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꿀벌 개체 수 감소가 바이러스 ?과도한 농약 살포와 직접적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꿀벌을 감염시키는 병원성 바이러스의 종류는 약 20개로 추산된다. 이 중 낭충봉아부패병(SBV)이라는 바이러스를 비롯해 이스라엘 급성마비병(IAPV)도 꿀벌이 떼죽음을 당하는 ‘봉군 붕괴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성분이 포함된 살충제를 뿌린 식물의 꽃가루를 먹는 꿀벌은 신경계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서 곧바로 죽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은 2013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3종의 사용을 2년간 금지하기도 했다.

○“꿀벌 사라지면 4년 내 인간도 멸망”

일반상대성이론을 내놓은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사라진다”고 예언했다. 실제로 꿀벌이 사라지면 꿀만 못 먹게 되는 게 아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많은 식물이 꿀벌이 날라다 주는 꽃가루로 수정한다. 사과, 배, 딸기, 자두, 수박, 참외, 고추 등 농작물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줘야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꿀벌이 인간이 먹는 작물 가운데 63%의 수분을 돕는 것으로 추정했다. 미 하버드대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랜싯’에 꿀벌 등 꽃가루 매개 곤충이 사라지면 매년 142만명 이상이 숨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과일 생산량이 22.9%, 채소가 16.3%, 견과류가 22.3% 줄면서 임산부와 어린이에게 필요한 비타민A, 비타민B, 엽산 공급이 감소하고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미·EU 정부까지 나서 보호책 내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화분을 매개로 농업에 유익한 꿀벌 보호책을 발표했다. 최근 5년 새 꿀벌이 비정상적으로 줄고 있어 앞으로 5년간 개체수 보호에 나선 것이다.

국내에서도 토종벌에 대한 복원과 꿀벌의 생존력을 강화하는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권형욱 서울대 농업생명과학연구원 교수팀은 올초 1만600개에 이르는 한국 토종벌의 게놈 전체 염기서열을 완성했다. 연구진은 유전체 해독을 통해 토종벌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취약한 이유 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농촌진흥청은 2013년 꿀벌 품종을 개량해 꿀 수집 능력을 31% 향상한 슈퍼꿀벌 ‘장원벌’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8/7] 2015 한경스타워즈 실전투자대회 개막 D-8
[이슈] 40호가 창 보면서 거래하는 기술 특허출원! 수익확률 대폭상승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