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줄기세포 신약 만들어 부활 성공…'제2 메디포스트' 더 많이 나와야"

입력 2015-08-06 18:27
수정 2015-08-07 07:32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창업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모범생
사업 초기 동료 잠적하며 13억 빚
제대혈 열풍 불면서 회사 급성장
실효성 논란에 매출 급감하기도

바이오산업 미래, 창업에 달려
동료가 건넨 줄기세포 아이디어
11년 연구 끝에 식약처 판매 허가
대기업 참여 늘어야 시장 커질 것


[ 조미현/김형호 기자 ]
“막걸리집 어때요?”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51)가 처음 만남을 제안한 곳은 서울 강남의 어느 막걸리 전문 선술집이었다. 편한 사람들과 저녁식사 겸 술자리를 같이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일반 음식점을 추천해달라는 얘기에 양 대표는 서울 청담동 ‘와세다야’를 떠올렸다. 일본식 화로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와세다야에 들어선 양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는 “퇴사한 전 임원들과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찾는 곳”이라고 식당을 소개했다.

‘누나’라고 불리는 CEO

양 대표는 국내 바이오업계에??드문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데다 의사 출신 창업자다. 생명공학, 화학 등을 전공한 교수나 대기업 연구원 출신 남성 창업자가 업계의 주류다. 하지만 그는 성격이 원만해 업계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메디포스트 출신인 진승현 랩지노믹스 대표 등 젊은 바이오기업 CEO들은 그를 ‘누나’라고 부른다.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격의 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양 대표를 보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리에 앉은 양 대표는 “기왕 왔으니 다양한 음식을 맛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모둠회를 먼저 주문했다. 와세다야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화로구이를 전문으로 하지만 회 메뉴가 따로 있다. 별도 메뉴인 토마토김치와 오이김치도 시켰다.

양 대표는 2000년 메디포스트를 창업했다. 메디포스트는 태아의 탯줄에서 나오는 혈액인 제대혈 보관과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등을 하는 회사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병리과 전문의로 있던 그에게 지인이 창업을 제안했다. 혈액, 골수 등 인체유래물 보관을 전문으로 하는 벤처기업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인체유래물 분석을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의사였던 양 대표는 평소 국내에서 인체유래물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당시는 정보기술(IT)과 바이오 벤처기업 창업 열풍이 불던 때였다”며 “원래는 CTO를 맡기로 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창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모든 걸 다 가졌다?”

주문한 음식이 상에 올랐다. 모둠회는 연어 광어 참치 등으로 구성됐다. 적당히 숙성시킨 회가 입에 착 감겼다. 고춧가루 양념으로 담근 토마토김치는 상큼하고 시원했다.

거창한 목표가 없었다고 했지만 그는 ‘비상한 머리’를 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양 대표는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했다. 의사 고시도 1등으로 통과했다.

사업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관계도 돈독하다. 내과병원을 운영 중인 남편과는 서울대 의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했다. 최근 남편과 단둘이 한 달간 국내 명소를 둘러보는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금실이 좋다. 딸과 아들은 각각 미국과 한국의 유명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신이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주신 거 아니냐”고 묻자 양 대표는 “그래서 사업을 하면서 위기가 많았나 보다”며 웃어넘겼다.

양 대표는 창업에 뛰어들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함께 창업한 동료가 자금을 가지고 잠적한 것이다. 지인들로부터 모은 초기 자금 13억원은 고스란히 빚이 됐다. 다시 의사로 취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가는 일이니까 해보자’고 생각했다. 의사로 일하면서 백혈병이나 소아암에 걸린 어린이들이 골수를 기증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자주 지켜봤던 그였다. 양 대표는 “국내에 제대혈 보관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며 “제대혈이 난치병에 걸린 어린이를 치료하는 데 쓰였다는 사연이 TV에 소개되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200억원 매출이 10억원 밑으로

회 접시가 빈 것을 본 양 대표는 화로구이를 주문했다. 그는 “좋은 사람들하고 모였을 때는 푸짐하게 먹어야 한다”며 항정살과 한우 안심, 살치살 등 다양하게 고기를 골랐다.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제대혈 열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대혈 사업이 각광받자 경쟁 업체들이 앞다퉈 생겨났다. 2003년에는 제대혈 보관의 실효성에 대한 언론 보도도 나왔다. 양 대표는 “메디포스트의 제대혈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데도 싸잡아 비난을 받았다”며 “한 해 200억원이던 매출이 10억원 밑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제대혈 파동’을 겪고 난 뒤 그는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다.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다. 현재 메디포스트는 국내 저장 제대혈의 43%(약 20만건)를 보관하고 있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성격”

와세다야의 대표 메뉴인 화로구이가 나왔다. 화로에서 잘 익은 항정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참숯향이 더해진 고기맛은 감칠맛이 돌았다.

피 말리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양 대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다면 이겨내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위기를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양 대표는 또 다른 성공 비결로 ‘경청’을 꼽았다. “제가 남의 말을 잘 듣는 성격이에요. 서로가 경험한 것이 다르기 때문에 행동하는 방식은 고정돼 있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판단보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어요.”

줄기세포 치료제에 눈을 돌린 것도 과거에 함께 일했던 정형외과 전문의의 아이디어를 듣고서다. 제대혈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로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를 만들어보라는 얘기였다. 줄기세포는 여러 신체 조직으로 분화하는 능력을 가진 세포다. 조직 재생 능력이 있기 때문에 노화로 닳아 없어진 무릎 연골 조직을 재생시키는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거란 생각을 했다.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연구개발에 나선 지 11년 만인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퇴행성 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을 허가받았다.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로는 세계 최초다.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는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로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약효가 일정하게 나타난다. 메디포스트는 미숙아 희귀 폐질환 줄기세포 치료제 ‘뉴모스템’과 알츠하이머 줄기세포 치료제 ‘뉴로스템’도 개발 중이다.

“바이오 창업 독려해야”

양 대표가 바쁘게 사업을 벌이는 사이 딸은 25세, 아들은 20세 성인이 됐다. 일하는 엄마로서 고충은 없었을까. “의사일 때는 병원 내 어린이집을 보내 수시로 얼굴을 보러 갔어요. 아이들이 각각 열 살, 다섯 살 때 창업을 했죠. 한창 엄마 손길이 필요할 때 해외 출장도 잦았기 때문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어요.”

다른 워킹맘들처럼 친정 부모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 교수 출신인 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유별났다. 무뚝뚝하고 엄했던 아버지는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양 대표는 여전히 다 큰 자녀들을 걱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요즘 같은 세상에 효자는 건강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식인 것 같다”며 “무엇을 하든 마음이 가는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배불리 먹었지만 식사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냉소바, 갈비 국밥, 육개장 생라면 등 여느 고깃집 식사와는 다른 메뉴가 많았다. 육개장 생라면의 국물은 진하고 매콤했고 면발은 쫀득했다.

양 대표는 최근 불고 있는 바이오 열풍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삼성그룹 등 대기업들의 바이오산업 참여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양 대표는 “바이오산업은 작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시작해 모멘텀을 얻고 이를 통해 사업을 키울 수 있는 분야”라면서 “연구개발 자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중소기업끼리만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성장시킬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양 대표는 “미래 산업인 바이오 분야 인재들이 얼마나 많이 창업에 뛰어드는지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디포스트 '카티스템'
세계 첫 퇴행성 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은 메디포스트가 2012년 처음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의약품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된 퇴행성 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다. 카티스템 시술 건수는 2013년 월평균 55건에서 올 1월 138건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카티스템 판매 확대 등에 힘입어 올 2분기 매출 96억원, 영업이익 9억4400만원으로 흑자전환했다. 회사는 2018년께 일본에서 카티스템을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964년 서울 출생
△1983년 서울 휘경여고 졸업
△1989년 서울대 의학과 졸업
△1989년 서울대병원 임상병리?전공의
△1994년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전공의 및 성균관대 의대 교수
△1999년 서울대 대학원 의학 박사
△2000년 메디포스트 창업
△2004년 보건산업진흥 유공자상 보건복지부장관상
△2011년 벤처창업대전 국무총리상
△2013년 제1회 대한민국신약대상 식약처장상
△2014년~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양윤선 대표의 단골집 / 와세다야 청담점
일본식 도자기 화로서 구워먹는 한우맛 '일품'

서울 청담동에 있는 일본식 화로구이 전문점이다. 2003년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처음 문을 연 뒤 2006년 청담동에 분점을 냈다. 일본에서 만든 도자기 화로에 참숯을 사용한다.

한우 살치살(6만3000원), 꽃등심(6만8000원), 닭 허벅지살 구이(2만3000원), 항정살 소금구이(2만3000원), 우설심구이(2만원) 등 원하는 고기와 부위를 골라서 주문하면 된다.

회도 즐길 수 있다. 사시미 5품 모둠(3만5000원), 혼마구로 사시미(2만8000원) 등이 있다. 이 집만의 특별 메뉴인 토마토김치(8000원)도 별미다.

영업시간은 월~토요일 오전 11시30분~오후 2시30분, 오후 5시30분~밤 12시다. 일요일 등 공휴일에는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11시 문을 연다. (02)3443-0541~2

조미현/김형호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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