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깃화 폭락…말레이시아 경제 '휘청'

입력 2015-08-04 19:21
원자재값 하락에 총리 부패 스캔들까지

총리가 설립한 국영투자펀드
개인용도로 자금 유용 의혹
정국 혼란에 외국인 자금 썰물


[ 임근호 기자 ]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주목받던 말레이시아 경제가 힘을 잃고 추락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동남아 2위 산유국으로서의 위상이 타격받은 것이 1차 원인이지만, 나집 라작 현 말레이시아 총리(사진)가 연루된 부정부패 스캔들이 극심한 정치 혼란을 불러오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외환보유액 감소·경상수지 악화

3일(현지시간) 외환시장에서 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깃화 가치는 전날보다 0.71% 떨어진 달러당 3.86링깃으로 마감했다. 4링깃을 넘어섰던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 1년간 하락률은 16%로 인도네시아 한국 태국 인도 등을 제치고 낙폭이 가장 컸다.

2013년 5월 1414억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외환보유액도 지난 6월 1055억달러까지 줄어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0억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외국인 자금 이탈과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의 환율 방어 노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제이슨 도 소시에테제네랄 외환전략가는 “외환보유액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며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환율을 방어할 실탄이 금방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3.80링깃을 뚫고 통화 가치가 더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경제위기의 1차 원인은 원유 가격 하락이다. 말레이시아 인근 해역에서 생산되는 고급 경질유 ‘타피스’는 손실이 커지면서 이미 작년부터 원유 생산 규모가 하루 59만배럴로 줄었다. 2000년대 초(85만배럴)의 70% 수준이다. 올해도 저유가가 계속되면서 말레이시아 무역수지와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7%에서 내년에는 1.1%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했다.

○나집 총리 스캔들로 투자심리 악화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나집 총리의 부정부패 스캔들이다. 나집 총리는 자신이 2009년 집권과 함께 설립한 국영투자펀드인 ‘1말레이시아 디벨로프먼트 버하드(1MDB)’의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활용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야당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1MDB는 말레이시아 겐팅그룹으로부터 원래 4억링깃인 화력발전소를 23억링깃에 사들이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2013년 5월 말레이시아 총선거를 앞두고는 자선활동을 명목으로 주요 선거구에 돈을 뿌린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MDB로부터 나집 총리의 개인 계좌로 약 7억달러가 이체된 정황도 포착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호주 ANZ은행의 쿤 고 선임 외환전략가는 “말레이시아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며 “글로벌 투자자들은 말레이시아의 정치적 혼란을 더 우려하고 있다”고 CNBC를 통해 진단했다. FT는 “1MDB 스캔들은 글로벌 펀드매니저의 말레이시아 투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면서 단순히 개인적인 정치 스캔들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전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