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선진국·신흥국 기준 모호"
칠레 GDP, 포르투갈보다 커
GDP 비중, 선진국 점점 줄어
[ 이정선 기자 ]
퀴즈 하나. 지난해 A국가 환율을 반영한 구매력평가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4090억달러, 정부의 순채무는 GDP 대비 13.9%다. 반면 같은 기준으로 따진 B국가 지표는 각각 2800억달러, 130.2%다. 포르투갈과 칠레 중 어느 곳이 A국가에 해당할까. 정답은 칠레다. 흔히 선진국으로 인식되는 포르투갈보다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칠레의 성적표가 훨씬 우수하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변화에 따라 선진국과 신흥국의 기준과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신흥시장(이머징마켓) 성장세를 반영해 세계 경제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서비스회사 인베스텍의 마이클 파워 투자전략가는 “신흥시장이라는 용어는 유용성 면에서 이제 맞지 않다”며 “현재 신흥시장은 저개발된 국가와 개발된 국가, 산업화한 국가 및 농업국가, 혹은 재정적자국과 흑자국 등이 모두 섞여 있다”고 지적했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분류에 따른 모순은 주요 경제 지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선 지난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GDP에서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카타르가 14만3000달러로 세계 1위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3위를 차지한 미국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위 10개국 중 선진국은 미국을 포함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에 그쳤다. 구매력평가로만 따졌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은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FT는 “1인당 GDP는 신흥시장과 선진국을 나누는 깔끔한 기준이었지만, 이제 불일치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세계 최대 경제국인 중국을 신흥시장으로 분류해놓고 있는 것 자체가 신흥시장이 안고 있는 딜레마”라고 진단했다.
세계 GDP에서 선진국 비중도 갈수록 줄고 있다. 2004년 54%였던 선진국의 위상은 10년 만인 지난해 43%로 축소됐다. 신흥시장의 경제 규모가 더 커졌다는 얘기다.
신흥시장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당시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 이코노미스트였던 앙투완 반 아그마엘이 정의하면서다. 이 용어가 통용되면서 저개발국, 제3세계 등으로 불리던 신흥국이 유망한 시장으로 부상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유엔, 모건스탠리캐피털지수(MSCI), JP모간 등이 경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FT는 외환보유액도 선진국과 신흥국을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기준 선진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9790억달러인 반면 신흥국은 7조5250억달러로 두 배에 육박한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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